천체 관측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회사원 A씨(42)는 지난해 12월 서울시내에 있는 회사와 강남의 집 근처를 샅샅이 훑었다.

지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화성을 관측하는 데 필요한 천체 망원경이 설치된 공공시설을 열심히 찾았지만 결국 허탕을 쳤다.

동네 과학용품점에서 구입한 소형 망원경으로 이 현상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과학문화와 관련한 인프라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사례다.

국내에는 종합과학관이나 자연사박물관,천체관,식물원,동물원 등 일반인들이 과학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크게 부족하다.

과학기술부에 등록된 과학관은 사립 18곳을 포함,56곳에 불과하다.

과학관 1곳당 인구수를 보면 한국은 85만명으로,독일의 10배,프랑스의 7배,미국의 6배에 이르고 있다.

과학관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곳이라고는 대덕의 국립중앙과학관 등 한두 곳밖에 없다.

그러나 국립중앙과학관의 경우 80만점의 전시물을 확보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스미스소니언이 5천만점의 전시물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기존 전시물도 전체적으로 노후화돼 보수·교체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과학관 현황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0%가 '전시물의 노후화로 인한 보수·교체'를 지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마디로 과학문화 공간을 채우고 있는 콘텐츠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얘기다.

외국에서는 흔한 자연사박물관도 물론 찾기 힘들다.

프랑스의 국립중앙과학관인 '라빌레트'처럼 즐겁게 놀면서 과학을 배울 수 있는 과학문화 체험 공간도 없다.

전통 과학관이나 첨단 기술 성과를 둘러볼 수 있는 산업기술 문화시설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기업의 과학문화 인프라 사업도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민간 기업에서 운영 중인 과학체험 공간 가운데 '삼성어린이박물관' 'LG사이언스홀' 한국가스공사의 '가스과학관',KT의 '홍보과학관'등은 과학문화 홍보에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활성화되지는 않고 있다.

기업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 과학문화 사업에 보다 많이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과학문화 인프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노력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다.

3천18억원을 투자해 오는 2012년에 과천에 국립과학관을 건설할 계획이다.

2012년까지 영남과 호남에 국립종합과학관을 1곳씩 추가로 세우기로 했다.

시·도별로도 대규모 테마과학관을 짓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대전 과학엑스포전시장을 개조해 체험형 학습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도 추진되고 있다.

정경택 과기부 과학문화과장은 "과학기술문화 인프라인 과학관 확충 및 운영 활성화를 통해 과학기술 중심 사회를 실현할 것"이라며 "지방화시대에 대비,지방자치단체의 테마과학관 건립 등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과학문화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그 시점도 앞당겨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숙경 한국과학문화재단 전문위원은 "과천 국립과학관 완공 시점을 앞당기는 것은 물론 과학관이 연구 정보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큐레이터도 키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