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이념논쟁에서 한발 물러섰다.

한나라당의 강력한 반발속에서 의문사진상규명위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특별법과 보안법 폐지 또는 대폭 개정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에서 야당과의 협의를 통한 추진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내린 결론이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정부는 이날 긴급 회동에서 의문사진상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국회 산하기구로 두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진상조사위가 과거정부의 결정을 재조사,진상을 규명하는 것이어서 대통령 소속이 맞지 않는 만큼 현 조직을 폐지하고 국회차원의 위원회를 새로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당·정·청은 문민정부 이후 국회에 제출돼 처리됐거나 올 정기국회에 제출될 제주4·3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법안과 민주화운동 특별법안 등 15개의 유사한 과거사 청산법안을 3개 부류로 묶어 통합키로 했다.

의문사진상규명법과 친일진상규명법,나머지 과거사 문제를 망라하는 과거사진상규명법(가칭) 등으로 구분하겠다는 것이다.

야당과의 협의를 거쳐 법안이 통과되면 국회 산하에 의문사진상규명위(가칭)와 과거사진상조사위(가칭),친일진상규명위(가칭) 등이 구성된다.

당·정·청은 보안법에 대해서도 야당과 긴밀히 협의해서 결정키로 했다.

안영근 제1정조위원장은 "의문사진상조사와 보안법 문제에 대해 여당이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모든 것을 야당과 협의해 풀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야당과의 협의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같은 여권의 입장선회는 당초 이들 사안에 대해 초강경 태도였던 당이 청와대측의 요청을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의문사조사위의 성격과 보안법 폐지 움직임 등 각종 안보현안을 둘러싼 논란이 이념대결로 비화되면서 청와대 등 여권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의문사진상조사위가 대통령 직속인데다 조사단에 간첩단사건 연루자가 포함된 게 한나라당의 거센 반발을 샀다는 점에서 현 조직 폐지와 국회로의 이관은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재창·박해영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