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간부가 취업을 미끼 삼아 구직자들로부터 1인당 2천만∼3천만원씩,총 6억여원을 챙겼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픽션같은 얘기지만 국내 굴지의 석유화학 회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문제의 그 노조 간부는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의식'이 있기로 정평이 나있던 사람이다.

그는 간부가 되자마자 노조의 '끗발'과 노조 내에서의 영향력을 이용,자기 회사에 취직을 시켜주겠다며 구직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자 곧바로 해외로 도주해버렸다.

아직 잡혔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그는 필시 어디선가 멋진 생활을 만끽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노조 간부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비난하기 위해 이 얘기를 꺼낸 게 아니다.

궁금한 것은 이 회사가 얼마나 좋길래 그 큰 돈을 바쳐가면서까지 들어가려 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 회사 근로자들의 평균 연봉은 6천만원이 넘는다.

1년만 일하면 '취업청탁료' 쯤은 쉽게 뽑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회사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전 사원의 해외연수를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요즘 같은 취업난에 취업청탁을 하지 않았다면 그게 바보지.

강성 노조로 유명했던 또 다른 대기업은 몇년째 이어지고 있는 무분규 협상타결로 잔치 분위기다.

하지만 타결 내용을 훑어보면 결코 웃고 즐길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물가상승률을 웃도는 임금인상은 물론이다.

여기에 더해 장사가 제법 됐다는 이유로 성과급 2백%,'경영위기 극복 격려금'으로 통상급의 1백%,'생산성 향상 격려금'으로 1백만원을 더 얹어줬다.

생활용품비 30만원,대학생 자녀 16학기분 등록금 전액지급,의료혜택 처부모 확대….끝이 없다.

회사가 노조의 요구를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여도 정상적인 경영이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다.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LG칼텍스정유의 사례를 보면 더 기가 질린다.

노조가 내세우는 파업 이유는 '생존권 쟁취'와 '삶의 질 향상'.하지만 이 회사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7천만원을 넘어섰다.

파업 초기 이 회사 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생존권 투쟁'이란 말은 우리가 입에 담기 부끄럽다.

남이 들을까봐 겁이 난다"는 글까지 올랐을 정도로 거의 모든 부문에서 국내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회사가 LG칼텍스정유다.

이 회사 노조는 주주들에 대한 배당이 너무 많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근로자 몫을 더 늘려달라는 것이다.

삶의 질을 높이려면 임금을 더 올리고 사람도 더 뽑아 근로시간을 줄여야겠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노조가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기업의 이해관계자가 어디 주주와 근로자 뿐인가.

그 회사 제품을 사주는 소비자들은 과연 노조에 어떤 존재인가.

정유사들은 올해도 큰 돈을 벌었다.

유가 급등기가 정유사들엔 더 없이 좋은 돈벌이 기회이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올들어 기름값 조정 시기까지 월단위에서 주단위로 바꿨다.

이익을 보다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정유사가 수시로 바꿔대는 가격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적응해주는 소비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LG정유도 이런 식으로 올 상반기에만 4천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그 이익을 만끽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 노조의 사상 첫 파업이다.

불쌍한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조의 배를 불려주고 있는 무지한 소비자들 뿐이다.

소비자들도 이참에 '휘투본(휘발유값 내리기운동 투쟁본부)'이라도 결성해 파업에 들어가는게 어떨지 모르겠다.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