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시장이 '투기판'으로 변해가고 있다.

유망 벤처기업의 '젖줄' 역할을 해야 할 시장이 투기적 매매행태에 길들여진 일부 작전세력 때문에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

터무니없는 테마주가 활개를 치고 이유도 없이 상한가와 하한가 행진을 벌이는 종목도 수두룩하다.

실적호전 발표 조차 단기매매의 재료로 이용되는 상황이다.

'돈 놀이'에만 열중하는 일부 대주주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도 극에 달했다.

◆반짝 테마주만 활개

코스닥시장은 '테마의 천국'으로 불린다.

로또복권 조류독감 광우병 구제역 줄기세포 장마 무더위 전쟁 등 말만 갖다 붙이면 그럴싸한 테마로 둔갑한다.

그러나 시장에 떠도는 테마 중 상당수는 '하루살이'다.

해당 테마와 실적의 연관성은 확인된 적도 없다.

지난 23일 퇴직에 따른 MCS로직(디지털오디오칩 생산업체) 한 임원의 지분변동신고가 개인투자자의 대량 지분 매입으로 둔갑해 주가가 갑자기 상한가로 치솟는 해프닝이 벌어진 게 대표적 예다.

이 회사 주가는 다음 거래일인 26일 11.2% 급락했다.

개인 '큰손'들의 대량 지분매입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를 지켜본 일부 투자자들이 '묻지마 투자'에 나서면서 빚어진 일이다.

통신장비업체인 벨코정보통신의 경우 지난 6월2일 9백50원이던 주가가 16일(거래일수 기준) 만인 24일 4천4백80원으로 3백71.5% 급등했다.

MP3플레이어 사업 진출 기대감으로 15일간 상한가 행진을 벌인 덕분이다.

그러나 대표이사가 불법주식매매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점을 감안하면 주가 급등이 지나쳤다는 게 증권가의 시각이다.

이 회사 주가는 최근 급락세로 돌변,1천6백원대로 떨어졌다.

◆심각한 모럴 해저드

기업 경영보다는 '머니 게임'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대주주가 많아져 최대주주 변경이 지나치게 잦은 것도 문제점이다.

올 들어 지난 26일까지 최대주주가 바뀐 기업은 1백17개사(1백58건)로 전체 코스닥 등록기업(8백83개사)의 13.25%에 달한다.

7.5개사 중 1개사 꼴로 최대주주가 바뀐 셈이다.

최대주주 변경 기업 수는 △2001년 1백개 △2002년 1백15개 △2003년 1백45개 등 해마다 증가 추세다.

실적악화와 주가 급락으로 헐값에 경영권을 내놓으려는 대주주가 크게 늘어난 결과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회사나 투자자도 모르는 사이에 최대주주가 바뀌는 사례도 있다.

BET는 지난 5월 대주주가 담보로 제공한 주식이 매각돼 최대주주가 바뀌었다.

코웰시스넷도 임시주주총회를 위해 주주명부를 폐쇄하고 나서야 최대주주의 지분이 모두 처분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공시했다.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한 뒤 유상증자로 자금을 조달해 꾼 돈을 갚는 '무자본 인수합병'까지 일어나고 있다.

위자드소프트 성광엔비텍 엔에스아이 등 10여개 업체의 경우 경영진의 횡령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작년 말 16개에 불과했던 관리종목 수가 지난 26일 현재 58개로 급증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주주의 모럴 해저드로 인한 실적 및 주가 부진은 결국 대부분 개인투자자의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며 "코스닥시장이 신뢰를 되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