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桂燮 <서울대 교수·경영학>

미국의 36대 대통령 린든 존슨의 비극은 정책의 남발로부터 비롯됐다.

1963년 대통령직에 오른 그는 전임 존 F 케네디를 뛰어넘는 업적을 남기려고 했다.

이듬해 2월, 존슨은 대규모 감세를 단행했다.

한 달 뒤에는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복지정책을 도입했다.

8월에는 제3세계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베트남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세계 최고 부국인 미국도 세 가지 정책을 동시에 집행할 수는 없었다.

전쟁 비용이 늘면서 국방비가 하늘로 치솟았다.

복지 예산이 집행되자 더 많은 혜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감세정책을 유지하면서 국방과 복지 지출을 충당하려다 보니 화폐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들었다.

성장 잠재력 배양과 무관한 분야에 예산이 집행되는 사이, 상품의 국제 경쟁력은 급격하게 떨어져갔다.

경제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미국 사회는 좌절과 불만의 어두운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늘날 우리에게 존슨의 비극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정부는 엄청난 재원이 소요되는 사업들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1백10조원 상당의 농어촌 투·융자가 계획 중이고 보육, 고용, 아동 교육비를 2배 가량 늘리겠다고 한다.

대형 토목사업을 추진하며 신도시를 20개나 신설하겠다고 한다.

과반수가 넘는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 수십조원이 소요될 행정수도 이전을 강행할 태세다.

외교·안보 분야에도 대규모 예산 지출이 불가피하다.

국방비의 대폭 증액이 요구되고 있고 북핵 협상이 타결된다면 보상의 명목으로 천문학적인 액수가 대북 지원 사업에 투입돼야 할 것이다.

한편 정부는 특소세 인하, 임시투자세액 공제 연장 등 각종 감세 조치를 취하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화와 민주화의 도정에 들어선 이상 앞으로 감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화된 경제에서는 조세의 국제 경쟁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세금이 높을 경우 외국 기업들의 국내 진출을 유도하기 어렵게 되고 국내 기업의 해외 탈출을 부추길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선거를 걱정해야 하는 정치가들이 재정 건전성을 챙기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인기 없는 정책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세율 인상과 조세 신설을 추진할 정치가는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비극을 막을것인가?

첫째, 지출 사업의 우선순위와 규모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재원 확보 대책이 없는 대규모 재정 집행으로 경제난을 초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제 경쟁력 및 성장 잠재력 배양과 밀접히 관련된 분야에 대한 예산 집행을 우선시하고 그 규모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분야에 대한 지출은 뒤로 미루거나 사업 규모를 줄여야 한다.

둘째, 정부 조직을 축소해 예산 지출 요인을 원천적으로 줄여야 한다.

수십개에 달하는 위원회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이들이 기대했던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전면적인 감사가 필요하다.

정부 부처 중에서도 기능이 중첩되는 부서가 없는지, 실제 기능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설립된 부서는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정부의 몸집은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어렵다.

일단 만들어진 부서는 지출을 늘려갈 뿐 줄이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업활동을 활성화해 세율을 높이거나 조세를 신설하지 않고도 세수를 늘릴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야말로 '세금이라는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라는 것을 인식,보다 많은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 우리 기업들이 국내에서 기업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아울러 기업은 고용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사회 복지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사회적 기여를 정부나 노조가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곤란하다.

강제화된 사회적 기여는 준조세화돼 기업인의 의지를 꺾을 수 있다.

재원 확보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장잠재력 배양과 관련이 없는 존슨과 같은 정책을 남발해 초래한 비극을 되풀이하느냐 여부는 정부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kesopyu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