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땅 아줌마치고 캔디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80년대 초 만화영화 '들장미소녀 캔디'를 보며 울고 웃었던 까닭이다.

신데렐라에 대한 꿈은 동서고금에 차이가 없는 걸까.

90년 할리우드는 거리 여자가 백만장자와 결혼한다는 '귀여운 여인'을 만들어 대성공을 거뒀다.

국내에서도 신데렐라 드라마를 만들면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토마토' '미스터 Q'처럼 배경과 배우만 바꾼 유사 드라마가 수없이 쏟아졌고 심지어 '신데렐라'라는 제목도 나왔다.

IMF 이후 잠시 독자적인 삶을 개척하는 여성을 그린 '아줌마'식의 드라마가 등장하는 듯하다 곧 무늬만 바꾼 신데렐라형으로 돌아갔다.

그러더니 올 여름엔 공중파방송 3사의 신데렐라 드라마가 장안의 화제다.

'파리의 연인'(SBS)'황태자의 첫사랑'(MBC)'풀하우스'(KBS2) 등이 그것.내용은 그야말로 뻔하고 주인공들의 캐릭터도 한결같다.

여자는 가난하지만 자존심 강하고 씩씩해 자기 주장도 잘하지만 마냥 착하고 때로 어리버리 덤벙댄다.

남자는 돈 외모 분위기까지 다 갖춘데다 연인에겐 뭐든 다해주고.

진부하고 허황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파리의 연인'은 시청률 50%에 육박하면서 파리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건 이들 드라마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로또처럼 잠시나마 꿈꾸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현실을 견디다 못해 무엇이든 가능한 마법 혹은 가상현실의 세계로 도피한다는 것이다.

힘들고 외로워도 문제 해결은커녕 손잡고 다독여줄 사람도 없는 마당에 어려울 때마다 기적처럼 나타나는 왕자를 보는 건 행복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는 허구고,그 속의 왕자는 오아시스가 아닌 신기루일 뿐이다.

여성대법관이 나오는 마당에 다 큰 여자들이 '애기'가 되고 싶어한다는 건 눈 한번 흘기고 말기엔 너무 지나치다.

셰익스피어는 '소박하고 성실한 건 바보처럼 여겨진다'고 간파했지만 TV 속 왕자 때문에 현실속 애인과 남편이 시시해지면 결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여성들이 화면속 왕자에 목을 매는 건 혼자 헤쳐나가기엔 현실이 너무 힘들다는 증거같아 우울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