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자금 움직임이 심상찮다.


개인투자자의 주식시장 엑소더스는 지난 2003년 3월 이후 지금까지 16개월여간 이어지고 있다.


국민연금 등 일부 연기금을 제외한 기관투자가들도 '증시 안전판' 역할을 뒤로 한채 최근 3개월간 1조4천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주식시장에서 빠져 나온 돈은 MMF(머니마켓펀드) CDMA(수시입출금식 예금) 등 초단기 금융상품으로 이동, 시중 자금의 단기 부동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거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해외 증시 등으로 투자처를 바꾸는 분위기도 날로 강해지고있다.


한국 증시가 지난 98년의 외환위기 때처럼 '공동화(空洞化)'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 증시 자금 썰물


이달 들어 고객예탁금은 5천억원 감소했다.


23일까지 투신사 주식형 펀드, 혼합형 펀드를 이탈한 주식 관련 자금은 2조5천억원을 넘는다.


하루 평균 주식거래 대금이 지난 2000년 이후 최저 수준인 1조5천억원대(코스닥 포함)로 급감하는 등 증시 체력이 소진된 것도 이 때문이다.


주식시장을 빠져 나온 돈은 채권시장으로 이동, 이달 들어 투신사 채권형 펀드 수탁고가 7조1천억원 증가했다.


때문에 주가가 줄곧 약세를 보이는 것과는 달리 채권가격은 강세(금리는 하락)를 지속하고 있다.


연초 연 4.9%를 웃돌던 3년 만기 국고채 유통수익률도 이런 이유로 최근 연 4.2% 밑으로 떨어졌다.



○ 단기 부동화…해외 이탈


증시는 돈 가뭄에 허덕이고 있지만 시중 부동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은행 종금 투신사 등에서 잠자고 있는 만기 6개월 미만의 단기 부동자금은 지난 6월 말 현재 3백88조8천억원.


전체 예수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1%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주식시장의 위험도가 높아지고 부동산 시장마저 묶이자 새로운 투자처를 찾을 때까지 투자자들이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돈 수요가 줄어들고 있어 단기 부동화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돈이 어느 정도 활발하게 돌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 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지난해 월평균 30∼40회에 달했으나 올들어 20회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대기업들은 풍부한 현금을 들고 있고, 중소기업들은 신용도가 낮아 대출을 못받고, 가계는 추가 대출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한국은행은 분석했다.


국내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 가운데 일부는 해외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작년 말 1백54억7천만달러였던 거주자 외화예금은 6월 말 현재 2백12억달러로 급증했다.


기업들의 수출 증대 영향도 있지만 외화예금중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년 말 29%에서 올해 35%로 확대된 사실을 감안하면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외화예금을 새로운 투자처로 찾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강하다.


해외 증시 투자도 지난해 월평균 3억달러 수준에서 올해는 7억달러를 넘어섰다.


해외로 빠져 나가기 위한 전 단계라는 지적도 있다.



○ 증시 자금 유인책 시급


증시 침체기에 돈이 증시를 이탈, 단기 부동화하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일시적 현상을 뛰어넘는 '위험 수위'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송상종 피데스투자자문 사장은 "과거 주가 바닥기에 우량주를 저가에 매집해 왔던 개인 '큰손'들이 국내 시장을 외면하고 해외 증시로 눈을 돌리는 것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은행ㆍ증권사 창구에는 해외투자 펀드를 찾는 VIP 고객의 발걸음이 잦고, 미국 증시 등 해외 증시에 직접 투자하는 계좌도 급증하고 있다.


증권사 사장단이 "비과세 장기주식투자 상품 허용,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기업연금 시행 등 국내 증시로 부동자금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 것은 이같은 절박한 상황의 반영이다.



장진모ㆍ김용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