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상인 성공사례] (11) 가구판매업 여운창·허진영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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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창(27)씨와 허진영(27)씨는 인터넷 틈새시장을 뚫어 오프라인으로 진출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부피가 커서 잘 취급되지 않은 사무용 가구를 아이템으로 선택해 온라인에서 기반을 닦은 후 오프라인에도 매장을 열어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
창업한지 1년6개월이 지난 지금 온라인 경매업체인 옥션과 경기도 파주 조립식창고 매장에서 각각 월 5천만원의 가구를 팔고 있다.
요즘은 창고로 찾아 오는 고객이 더 많아졌다.
오프라인은 마진이 20%정도로 온라인 보다 훨씬 높아 가격 경쟁이 치열한 온라인에 매달릴 때 보다 회사의 수익이 나아졌다.
"졸업 후 취업을 할 것인지,사업을 할 것인지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창창한 나이에 실패하더라도 밑질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지금 생각하면 창업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업을 결심한 이들은 아이템을 가구로 잡았지만 막막하기만 했다.
물건을 어디서 받아올지,어떤 경로로 파는지 등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래서 둘은 가구점에 배달사원으로 취업했다.
일을 하면서 업계현황을 파악하고 '미래의 거래처'를 하나씩 확보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이들은 가게에 배달오는 가구 공장 직원들과 친분을 쌓았고 연락처도 하나씩 적어 두었다.
그리고 몇몇 업체로부터 독립하면 물건을 대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사표를 냈다.
하지만 사업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우선 창업자금이 막막했다.
둘은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며칠에 걸쳐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겨우 2천만원을 장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구를 갖다둘 사무실을 마련하는 게 문제였다.
의정부 김포 등 서울외곽을 돌아다니며 알아봤지만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우연하게 일이 해결됐다.
전에 가구점에서 일할 때 알게 된 택배회사 사장이 사정을 듣고 서울 양재동 화물트럭터미널의 창고를 소개해 준 것.5평 남짓에 불과했지만 월세가 25만원이고 배송이 편리한 위치를 감안하면 운이 좋은 셈이었다.
회사명을 '상도(商道)가구'로 정하고 사업자등록을 한 후 간판을 내걸었다.
배달용 봉고차 한 대와 초도물량을 들여 놓았을 때쯤 창업 자금은 거의 바닥나고 있었다.
비용을 최대로 줄여야 했다.
업무를 분담하고 전화 팩스 등 사무용집기는 각자의 집에서 조달했다.
마침내 옥션에 제품사진과 설명을 올리고 판매를 시작했다.
경쟁자가 없어 물건은 날개 돋친듯 팔려 나갔다.
다행히 거래처에는 현금결제를 원칙으로 한 덕분에 물건을 조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물건을 공급해 주겠다는 가구공장이 줄을 섰다.
온라인 사업은 신뢰가 생명.포장에 신경을 쓰고 당일 배송원칙을 지켰다.
빠른 배송을 위해 수요를 예측하고 재고를 적정선으로 유지했다.
판매량이 점차 늘어나면서 창고도 2개로 늘었다.
직원도 5명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다.
한 달 월급으로 각자 1백30만원씩 가져가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재투자된다.
여씨는 "사업을 시작한 후 친구는 물론 가족과 식사 한 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신 꿈과 사회 적응력이 또래 직장인에 비해 커진 게 이들의 자부심이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
부피가 커서 잘 취급되지 않은 사무용 가구를 아이템으로 선택해 온라인에서 기반을 닦은 후 오프라인에도 매장을 열어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
창업한지 1년6개월이 지난 지금 온라인 경매업체인 옥션과 경기도 파주 조립식창고 매장에서 각각 월 5천만원의 가구를 팔고 있다.
요즘은 창고로 찾아 오는 고객이 더 많아졌다.
오프라인은 마진이 20%정도로 온라인 보다 훨씬 높아 가격 경쟁이 치열한 온라인에 매달릴 때 보다 회사의 수익이 나아졌다.
"졸업 후 취업을 할 것인지,사업을 할 것인지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창창한 나이에 실패하더라도 밑질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지금 생각하면 창업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업을 결심한 이들은 아이템을 가구로 잡았지만 막막하기만 했다.
물건을 어디서 받아올지,어떤 경로로 파는지 등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래서 둘은 가구점에 배달사원으로 취업했다.
일을 하면서 업계현황을 파악하고 '미래의 거래처'를 하나씩 확보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이들은 가게에 배달오는 가구 공장 직원들과 친분을 쌓았고 연락처도 하나씩 적어 두었다.
그리고 몇몇 업체로부터 독립하면 물건을 대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사표를 냈다.
하지만 사업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우선 창업자금이 막막했다.
둘은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며칠에 걸쳐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겨우 2천만원을 장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구를 갖다둘 사무실을 마련하는 게 문제였다.
의정부 김포 등 서울외곽을 돌아다니며 알아봤지만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우연하게 일이 해결됐다.
전에 가구점에서 일할 때 알게 된 택배회사 사장이 사정을 듣고 서울 양재동 화물트럭터미널의 창고를 소개해 준 것.5평 남짓에 불과했지만 월세가 25만원이고 배송이 편리한 위치를 감안하면 운이 좋은 셈이었다.
회사명을 '상도(商道)가구'로 정하고 사업자등록을 한 후 간판을 내걸었다.
배달용 봉고차 한 대와 초도물량을 들여 놓았을 때쯤 창업 자금은 거의 바닥나고 있었다.
비용을 최대로 줄여야 했다.
업무를 분담하고 전화 팩스 등 사무용집기는 각자의 집에서 조달했다.
마침내 옥션에 제품사진과 설명을 올리고 판매를 시작했다.
경쟁자가 없어 물건은 날개 돋친듯 팔려 나갔다.
다행히 거래처에는 현금결제를 원칙으로 한 덕분에 물건을 조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물건을 공급해 주겠다는 가구공장이 줄을 섰다.
온라인 사업은 신뢰가 생명.포장에 신경을 쓰고 당일 배송원칙을 지켰다.
빠른 배송을 위해 수요를 예측하고 재고를 적정선으로 유지했다.
판매량이 점차 늘어나면서 창고도 2개로 늘었다.
직원도 5명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다.
한 달 월급으로 각자 1백30만원씩 가져가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재투자된다.
여씨는 "사업을 시작한 후 친구는 물론 가족과 식사 한 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신 꿈과 사회 적응력이 또래 직장인에 비해 커진 게 이들의 자부심이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