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대 < 고려대 총장 president@korea.ac.kr >

'트로이'란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전쟁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왜 분열과 갈등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평화사절로 스파르타에 갔다가 아름다운 왕비 헬레네에게 반해 그녀를 유혹해 도주하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고 만다.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 왕은 분기탱천해서 그의 형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를 정벌하러 나서는데 이것이 트로이전쟁의 시발이었다.

평화사절로 간 사람이 어떻게 그 나라 왕비를 '보쌈질'해서 도망치는 짓을 생각했을까? 이런 의문은 에리스의 사과를 알면 풀린다. 에리스는 불화의 여신이다. 가는 곳마다 이간질을 일삼고 불화를 일으키다보니 신들로부터도 '왕따'를 당했던 모양이다. 바다의 님프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 날에도 에리스만은 초대받지 못했다. 화가 난 그녀는 결혼식장에 사과 한 개를 던지고 사라진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 여신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이 한 구절이 트로이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헤라,아테나,아프로디테 세 여신은 사과에 쓰인 글귀를 보자 서로 자기가 사과의 주인이라고 싸웠다. 골치가 아파진 제우스는 파리스에게 심판 역할을 맡겼고,영문을 모르는 그는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주겠다'는 아프로디테의 말에 이끌려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주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덕분에 아름다운 헬레네를 부인으로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헤라와 아테나의 질투와 분노를 샀기 때문에 하필이면 강대국 스파르타의 왕비를 '보쌈질'해야 했고,결국 자신과 트로이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에리스의 사과가 상징하듯이 미와 추,선과 악,개혁과 반개혁 같은 모호한 기준으로 남들을 비교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칭찬도 예외가 아니다. 상사가 객관적인 기준 없이 특정 부하를 과도하게 칭찬하면 다른 부하들의 질투와 분노를 사서 조직 내 분열과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대학행정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조직을 운영할 때면 평가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선은 피평가자가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주지시키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평가라도 '잘하는 사람에게는 꾸중을 더 많이 하고 못하는 사람에게는 칭찬을 더 많이 하라'는 격언에 따르고자 애써야 한다. 인간은 독립된 감정의 동물이면서 동시에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