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정보통신연구진흥원이 국내 주요 휴대폰 업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만든 실태보고서를 보면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해외시장의 주요 경쟁상대를 꼽으라'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44%의 업체가 '한국 기업'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해외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간 경쟁이 얼마나 치열해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우리 휴대폰 업체들이 중국시장에서 덤핑 경쟁을 벌인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수출지역 쏠림현상도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휴대폰 업체들은 향후 2∼3년 간 최대 수출시장으로 중국(38%)과 북미(31%)를 꼽았다. 서유럽(8%)이나 동유럽·러시아(8%)의 비중은 극히 미미했다. 우리 업체들의 대부분이 일부 시장에 치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세원텔레콤 텔슨전자 등 내로라하는 중견 휴대폰 업체들이 잇따라 법정관리나 화의를 신청한 것도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1백개에 달하는 중견·중소업체들은 중국 등 일부 지역에서 과당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국내외에서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았다지만 세계시장에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업체는 삼성전자 LG전자 팬택계열 등 '빅3'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중견·중소업체들이 속속 쓰러지고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국내 휴대폰업계는 '3강 체제'로 더욱 굳혀지고 있다.

지난해 '휴대폰 빅3'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82%나 됐다. 나머지는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자의 자회사인 SK텔레텍 KTFT와 모토로라의 자회사로 편입된 어필텔레콤 등이 차지했다. '빅3'와 대기업 자회사가 아닌 중견·중소업체들은 수출로 돌파구를 모색하다 대부분 적자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내수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중견·중소 업체들은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의존도가 높은 중국시장에서 과당경쟁이 판을 치는 바람에 공멸의 길을 걷게 됐다. 벨웨이브 맥슨텔레콤 등 일부 업체가 해외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금은 인수합병(M&A) 대상으로 나온 상태다.

휴대폰업계 한 관계자는 "수출로 먹고 사는 중소 휴대폰 업체가 1백개도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그러나 이제는 차별화된 기술이나 전략 없이는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소 휴대폰 업체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기술개발과 함께 M&A나 전략적 제휴를 통한 '덩치 키우기'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인력 및 기술의 해외 유출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휴대폰 업계 구조조정 과정에 인력과 기술이 외국 경쟁업체들에 빠져나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국가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