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과 지옥이 소송을 벌이면 천당이 백전백패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유능한 변호사는 전부 지옥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변호사뿐만 아닐 것이다.

유능한 회계사도,노련한 세무사도 모두 지옥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남다른 수익률을 올리는 펀드 매니저도,치열한 승부에 익숙한 허다한 기업가도 천당보다는 지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영혼의 안식처를 만들 법하다.

그렇다면 천당보다 지옥이 오히려 살기 좋은 곳일지도 모르겠다.

온갖 이기적 인간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남의 돈을 홀려내기 위한 온갖 편리한 상품과 서비스도 넘쳐나게 될 터이고….

악(惡)한 동기,이기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그러나 그 총화로서 살 만한 곳이 되는 그런 원리가 요즘 한창 토론이 치열한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바로 시장경제다.

인간은 선한 존재며 설득과 동의,합의에 의해 사회를 운영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상주의자요 사회주의자요 좌파가 되고 만다.

공익이 우선시되고 공익을 담보하는 정부가 시장에 우월하다고 믿는다면 역시 반(反)시장파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는 모든 활동의 집합체가 결과적으로 사회를 살찌워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명분을 붙이더라도 역시 얼치기 좌파다.

사회공헌 기금 따위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유한양행삼성전자의 사회기여를 계량한다면 결과는 너무도 명백하다.

40년 전에 두 회사는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지금 두 회사의 고용,납세,소비자 기여,공익 활동 등은 아예 비교를 불허한다.

민영화에 찬성하느냐 공기업화를 찬성하느냐로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좋은 잣대요,정부가 커지고 있는지 작아지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도 시대 이념을 재단하는 좋은 잣대다.

굳이 명분을 꾸미느라 잔머리 굴리는 속까지 들여다 볼 필요도 없다.

주택원가를 공개하라고 주장한다면 반시장파다.

주택업자에게 원가를 공개하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근거로 가격을 통제하려 든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시장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원가 공개를 요구할 뿐 가격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한다면 솔직하지도 못한 것이고….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 대표가 "경제 회복을 위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하는 것은 여간 당혹스런 일이 아니다.

이헌재 부총리가 시장경제 해먹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직후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부총리가 시장경제 운운했을 때 발끈한 것은 집권여당이었다.

이론가를 자처하는 분들이 대거 등장해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고치자는 것일 뿐이라고 수습에 나섰지만 천정배 대표의 '사회적 합의' 한마디로 모두 까먹고 말았다.

정체성은 숨기려고 해서 숨겨지지 않는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집권당 대표의 바로 그 언명이야말로 반시장 경제요,이헌재 부총리가 말하는 '해먹기 어려워진 상황'에 다름 아니다.

시장은 시장가격에 의해 돌아가는 것일 뿐 합의가격 혹은 협정가격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젠가 "합리적 보수,따듯한 보수 등 별놈의 보수를 갖다놔도 보수는 보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로 폐부를 찌르는 말이다.

지금 노 대통령의 논법을 그대로 빌려 시장경제 논쟁을 정리할 수 있겠다.

그 말은 이렇게 된다.

"사람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니,지도받는 시장경제니,질서 시장경제 등 별놈의 시장경제를 내걸어도 반시장은 반시장이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