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마침내 '석유화학 왕국'의 꿈을 이뤘다.

롯데계열 호남석유화학은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KP케미칼의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과 이 회사의 경영권을 8천1백35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조건은 호남석화가 주당 3천5백억원에 지분 53.8%를 인수하고 확정적 우발채무 3백87억원과 인수금융 3천6백8억원 등 총부채 5천9백63억원을 넘겨받는다는 것이다.

호남석화는 이에 앞서 지난 23일 LG화학과 공동 인수한 현대석유화학의 분할경영에 합의했다.

이로써 유화업계 5∼6위권을 맴돌던 호남석화는 외형이 4조원대로 커지면서 LG화학에 이은 2위 업체로 올라서게 됐다.

특히 바닥재 등 산업재를 제외한 유화제품만 따질 경우 생산능력이 오히려 LG화학을 앞서는 규모여서 롯데의 향후 행보에 유화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화업계 지각변동

KP케미칼은 호남석화가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PTA(테레프탈산)와 그 원료인 PX(파라자일렌)을 생산하는 회사.PTA는 국내 3위(연 1백8만t),PX는 2위(연 70만t) 규모다.

페트병용수지 생산 규모도 국내 1위(연 39만6천t) 수준이다.

게다가 생산제품의 90% 이상을 모스크바 상하이 도쿄 홍콩 등지의 현지법인·지사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이번 KP케미칼 인수로 직수출 라인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호남석화가 해외시장 진출에 중요한 거점을 확보하게 됐다는 얘기다.

호남석화는 또 현대석화 2단지 인수로 에틸렌 생산능력(연 1백32만t)이 여천NCC(연 1백43만t)에 이어 업계 2위로 껑충 뛰었다.

현대석화와 KP케미칼을 합칠 경우 전체 매출순위는 LG화학에 이어 2위.정통 석유화학 부문만 따질 경우 3조2천억원 규모인 LG화학을 제치고 업계 1위로 떠오르게 됐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업체로는 드물게 나프타분해에서 기초유분,최종제품까지 완벽한 수직계열화를 이루고 해외 판매망까지 두루 갖춰 시너지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새 성장동력

2건의 기업인수합병(M&A)으로 롯데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게 됐다.

롯데는 이미 석유화학을 제과,유통·레저 등과 함께 3대 핵심사업으로 삼아왔으나 이번 인수로 보다 확실한 주력사업으로 자리를 잡게됐다.

호남석화의 외형은 4조원 규모.롯데그룹 36개 계열사중 매출 1위인 롯데백화점(7조3천억원)에 이은 2위 규모다.

특히 최근 신격호 롯데 회장의 2남인 신동빈 부회장이 이 회사의 새 대표이사로 선임돼 석유화학 부문에 큰 힘이 실린 상태다.

신 부회장은 호남석화 여천공장과 현대석화 대산공장을 자주 방문하는 등 석유화학 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석유화학사업이 기존 주력업종인 유통과 더불어 롯데그룹을 이끌고 갈 양대축이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덩치키우기 계속된다

호남석화의 '몸집 불리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신격호 회장도 평소 "석유화학 산업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완벽한 수직계열화와 함께 덩치를 키워야 한다"며 사업 확대를 독려해왔다.

호남석화 관계자는 "당장은 KP케미칼의 정상화에 주력하겠지만 늦어도 2∼3개월 이내에 중장기 전략을 위한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화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지만 국내는 공급과잉이어서 신·증설이 힘든 만큼 중국 중동 등지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말해 해외 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