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8백점에 가까운 토익(TOEIC) 점수를 받은 A씨는 최근 (주)GS홀딩스의 임원용 차량 운전기사로 취직하려고 지원서를 냈다.

비정규직인데다 임원 스케줄에 따라 저녁시간은 물론 주말까지 반납해야 하는 고된 자리라는 것을 잘 알지만 '일단 일자리부터 잡고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결과는 '낙방'.

운전기사에게 필요한 건 학력이 아닌 운전 실력과 인성이며 오히려 학력이 높을 경우 이직할 가능성이 높다는게 이유였다.

GS홀딩스가 운전기사 두 명을 채용하기 위해 헤드헌터에 제시한 자격은 딱 두 가지.

나이가 30대 초ㆍ중반이고 운전 경력이 5년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조건에 학력은 없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 전체 응시자 20여명 중 절반이 대졸자였다.

A씨처럼 토익 성적 8백점 수준인 응시자도 여럿이었다.

고학력 청년실업의 그늘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효성은 기술최고책임자(CTO)의 일을 도울 일본어 통ㆍ번역 비서 1명을 모집했다.

비서 일을 하면서 필요할 때만 간간이 일본어를 구사하면 되는 자리.

인사팀은 어느 정도 일본어 실력을 갖춘 4년제 대학 졸업자를 뽑을 예정이었지만 막상 원서를 낸 지원자들의 면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원자 2백여명의 60% 이상이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일본어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 20%는 일본에서 석ㆍ박사를 마친 학위 보유자들이었다.

외대 동시통역대학원에서 일본어 통역을 정식으로 공부한 지원자도 3명이나 됐다.

예상 밖의 고급 인력들이 쇄도하자 효성은 일단 채용을 보류한 상태다.

LG전자는 지난 5월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1백명을 모집하면서 학력은 결코 묻지 않겠다는 공고를 냈다.

하지만 지원자 3천여명 중 고졸 또는 전문대 출신 응시자는 거의 없었다.

반면 80% 이상이 해외 석사 등 국내외 유명 대학 출신이었다.

오상헌ㆍ유창재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