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서품식에 나선 신학생 김규식(권상우)에게 주교는 천주님께 순결을 바치고 평생 독신을 고수하겠느냐고 묻는다.

규식은 그토록 열망해 온 순간이건만 답변을 못한 채 그렁그렁한 눈물만 떨군다.

허인무 감독 '신부 수업'의 종반부는 성(聖)과 속(俗)의 갈림길에 선 주인공의 갈등을 집약하고 있다.

이 영화는 신부를 꿈꾸는 규식과 신부(新婦)가 되고 싶어 안달난 봉희(하지원)의 사랑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다.

종교인의 파계를 코미디 영화의 소재로 끌어온 것은 드문 일이다.

장 폴 벨몽도가 신부로 출연해 여인의 구애를 물리쳤던 프랑스 영화 '레옹모랭 신부'와 신부가 파계를 선택하는 안토니아 버드 감독의 영국 영화 '프리스트' 등은 종교인의 고뇌를 정면으로 다룬 진지한 작품이었다.

'신부 수업'에서도 규식의 내면 갈등은 사랑의 실천을 내세우면서도 성직자에게 사랑을 금지한 종교의 모순율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규식이 봉희와 겪는 외연적인 갈등은 웃음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묵주를 액세서리로 착용하고 성당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성인 영화를 몰래 보고 음주를 일삼는 봉희의 행위는 근엄한 계율을 섬겨온 규식으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은 이같은 장벽을 극복하며 '규식의 파계'마저 해피엔딩으로 이끈다.

규식은 파계한 이후에도 여전히 천주님의 종이며 봉희까지 신앙인이 되도록 이끌었다.

철학자 사르트르의 명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를 대입하면 '참된 사랑은 계율에 앞선다'는 게 이 작품의 주제다.

가톨릭을 상징하는 남신부 역의 김인문은 주제를 반증한다.

불교 소재의 코미디영화 '달마야 놀자'에서 건달들을 품안에 껴안는 큰스님 역을 맡았던 그는 여기서도 계율에 얽매이지 않는 넉넉한 품성을 체현하고 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말죽거리 잔혹사' 등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고교생 역을 해냈던 권상우는 비로소 성인 연기자로 거듭났다.

규식은 종교인답게 절제된 가운데 깊은 고뇌를 표현했다.

반면 하지원은 지나치게 과장된 감정선을 유지해 권상우와 호흡을 일치시키지 못했다.

'색즉시공'과 '내사랑 싸가지' 등의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온 탓에 연기가 매너리즘에 빠진 것 아닌가 싶다.

강력한 호소력이 담긴 종반부와 달리 초·중반부까지는 극의 흐름이 미적지근하며 웃음의 강도도 약하다.

6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