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시절 조울증에 걸린 후배를 통해 그 병의 무서움을 느껴 본 적이 있었다.

서로 마주치면 인사도 잘 하던 후배가 어느 날인가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다.

반갑게 아는 척을 하는 나의 체면을 짓이기면서 말이다.

나중에 안 것이었지만 후배는 조울증 환자였다.

조증이 나타나면 그야말로 지나치게 기분이 좋아지고 상기되는 상태가 지속된다.

잠도 안자고 독서에 몰두하기도 하고 분수에 넘치는 쇼핑을 하는 등 기분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상태가 지속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얼마 후 울증의 증세가 나타나면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몇날며칠 틀어박혀 집에서 나오지 않기도 하고 만사가 귀찮고 힘들어진다.

아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울증이 도질 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아주 쉽게 삶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더 문제는 조증의 높이가 높을 수록 울증의 깊이도 깊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증이 나타날 때 빨리 약물을 통해 기분이 지나치게 좋아지는 것을 막아야 나중에 나타날 깊은 울증을 방지할 수 있다.

조증이 나타날 때 투약을 게을리하면 결국 나중에 깊은 울증을 체험하면서 나락같은 어둠에 빠져든다.

결국 그 후배는 집안끼리 연결돼 혼담이 오가던 어느 날 행방불명이 됐다.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몇 번의 전화가 끝이었고 다시는 그를 본 사람이 없었다.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극적인 회생 과정에서 세번의 조증을 경험했다.

첫번 조증은 벤처붐과 함께 찾아왔다.

물론 이는 전세계적인 신경제의 흐름을 탄 것이기는 했지만 우리 경제에 상당한 파장을 남겼다.

코스닥 등록 전의 비상장 주식을 액면의 몇배만 주고 사면 몇십배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얘기에 혹해 하면서 가계들이 몇백만원, 몇천만원씩 투자를 하고 결국 이 모든 투자금액이 휴지조각이 돼버린 예는 부지기수다.

사채시장의 자금도 대거 프리코스닥 시장으로 이동했고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정부는 자금출처조사를 게을리함으로써 이 자금의 이동을 상당부분 그대로 방치했다.

이미 이 시점에서 우리 경제는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뒤이어 찾아온 카드와 부동산의 경우 따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신용카드라는 수단을 통해 과도한 소비를 하고 부동산가격이 오르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마구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구입하는 등 우리의 경제 내에서 가계가 보인 행태는 정확하게 조증환자의 행태였다.

그리고 더 안좋은 것은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통해 조증을 막았어야 할 정부가 오히려 투약은커녕 조증이 나타나는 것을 방치하고 조장하기까지 했다.

의사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우리 경제에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우울증은 조증이 높았던 만큼 너무나도 깊고 암울하다.

기업투자의 부진과 함께 소비의 추락이 동반되면서 한국경제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수출이 아무리 잘되어도 별로 소용이 없다.

소비가 안되니 내수부문에의 투자가 안되고 투자가 안되니 실업이 악화되며 소비가 안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다시 한번 모두 정부를 쳐다보고 있는데 정부는 환자의 심리상태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지 과거지향적인 진상규명과 개혁만 부르짖고 있다.

조증 이후 우울증이 나타난 환자에게 메스를 들이대면 해치려는 줄 알고 도망친다.

정상적 상태에선 아무렇지도 않을 조치들이 취약한 심리상태 하에서는 효과는커녕 부작용만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지나친 조증에 지쳐 깊은 우울증에 빠진 경제의 심리상태를 잘 고려해야 한다.

기업과 가계의 심리를 안정시킬수 있도록 지나친 분배위주의 정책을 지양하고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등 상처받은 심리를 어루만지는 정책이 필요하다.

소비와 투자를 할 여유가 있는 가계와 기업이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하면 취약해진 경제기반은 더욱 어려워지고 경제회복은 지연되면서 자꾸만 더 깊은 우울증의 나락으로 빠져갈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처방을 해 의사로서의 명예를 회복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