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소주를 두고 불황을 먹고 사는 상품이라고 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소주판매가 늘어나는 것을 빗댄 말이다.

사실 힘든 생활을 견디고 하루의 피로를 푸는데는 소주만한 게 없다고 얘기한다.

누구나 부담없이 어울려 권커니 잣거니 할 수 있는 소주야말로 서민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 와서는 경기불황이 깊어지면서 주머니 사정은 물론이고 서민들의 정서 또한 메말라가는 형국이다.

취직이 어려워 청년실업이 늘고 직장생활은 고용의 불안정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신용불량자도 수백만명에 이르러 사회불안이 가중되고 이런 와중에 정치인들의 실익없는 명분싸움은 모두를 지치게 한다.

때문에 소주 한잔 마시고 시름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심정일까.

올 상반기 소주소비량이 54만9천㎘나 됐다고 한다.

통계청 집계를 보면 이는 IMF 당시에 이어 사상 두번째로 많은 것이다.

반면 위스키소비량은 직격탄을 맞았고 맥주소비도 크게 줄었다.

마치 불황과 실직으로 아린 가슴을 소주로 달래기나 한 듯하다.

소주집의 풍속도 변했다.

양주처럼 먹다 남은 병에 이름표를 달아 보관하는 '소주 키핑'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소주소비량이 경제고통지수와 비례하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인 것 같다.

경제고통지수는 물가상승률 산업생산감소율 실업률 어음부도율이 높을수록 커지는데 소주 소비 역시 이 네 가지 지표와 밀접한 것이다.

경제적 고통과 소주소비의 상관관계를 누군가가 경제지표로써 고안해봄 직하다.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행복한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자신이 건강해서,좋은 친구가 있어서,가정이 화목해서,좋은 꿈을 가지고 있어서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푯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술은 억눌렸던 감정을 드러내고, 때로는 용기를 주고, 어느 순간에는 멋대로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지르게 하는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렵게 살아가는 삶이지만,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소주 한잔이라도 어울려 마실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주 먹는 사회는 낭만이 있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