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경영상 판단의 결과로 기업에 손실을 끼쳤다면 CEO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번 결정은 실패한 경영에 대해 책임을 묻는 방법인 '배임죄'를 적용하는데 있어 '고의성'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대법원 3부(주심 강신욱 대법관)는 3일 삼미종합특수강 한보철강 등 부실기업에 거액의 지급보증을 해줘 회사에 손실을 초래한 혐의(특경가법상 배임 등)로 기소된 고순복, 심형섭 전 대한보증보험 사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배임죄의 성립 여부는 손해가 발생했다는 결과만으로 판단할 게 아니라 판단을 내린 경위와 상황 등 모든 사항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며 "특히 배임죄의 성립 조건인 '고의성'은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얻는 반면 자신은 손해를 입는다는 인식을 한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한 행위에 대해서만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한보증보험은 대출금 전액 회수를 전제로 한 일반은행과 달리 보험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어느 정도 있음을 전제로 영업을 하는 특성이 있다"며 "지급보증 과정에서 관련 법령이나 영업지침 위반이 없는 등 피고인들의 지급보증 행위가 배임죄를 성립시킨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고씨는 대한보증보험 사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93~95년 한세산업 등 7개 업체와 삼미종합특수강에 각각 69억원과 78억원을, 심씨는 96년 11월 한보철강에 3백99억원의 지급보증을 서도록 지시했다가 이들 회사의 부도로 손실을 끼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두 사람 모두 2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각각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