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院산책] (3) 화엄사 선등선원..내마음을 아는 것…쉬운가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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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 문턱을 넘어섰으나 칼을 벼리는 듯한 선기(禪氣)가 없다.
오래 참선정진한 선객들 가까기에 서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을 느끼기 마련인데,선방에 사람이 없는 것일까.
마침 요사채 쪽에서 나타난 한 스님이 "오늘은 삭발하는 날"이라고 귀띔해준다.
지리산 화엄사 선등선원(禪燈禪院)을 찾아간 날은 마침 음력 6월14일.이곳 선원에서는 하안거 결제일(음력 4월 보름) 전날부터 열흘마다 삭발하기 때문에 그날이 삭발일이었던 것이다.
무명초(無明草)를 자른 스님들이 그간 정진하느라 굳었던 몸을 풀기 위해 산행을 하느라 선방이 비어 있다는 설명이다.
화엄사 대웅전 뒤편의 높다란 산언덕에 자리한 선등선원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남악선원이 있던 자리에 2002년 복원한 선원이다.
복원한 지 3년밖에 되지않은선원이지만 안거 때마다 30명 안팎의 수좌들이 모여들 만큼 인기가 높다.
이번 하안거에는 25명이 정진 중이다.
선원의 바깥 풍경을 몇 장 사진에 담은 뒤 요사채 뒤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선원장 현산(玄山·61) 스님의 거처로 발길을 옮겼다.
5분쯤 걸었을까.
각황전과 함께 화엄사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인 국보 제35호 4사자 삼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석탑 뒤편의 왼쪽 아래에 '성적문(惺寂門)'이라는 편액을 단 탑전이 있다.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이 문을 열고 들어서니 현산 스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19세 때 출가해 지난 64년 비구계를 받은 현산 스님은 출가한 이후 일찍부터 선방만 다닌 수좌 출신.경봉 동산 전강 구산 스님 등 쟁쟁한 선사들을 모신 경력을 갖고 있다.
선사에게 선등선원이라는 이름의 뜻부터 물었다.
"원래 화엄사에는 이 탑전의 월유(月遊)선원,봉천원의 남악선원,그리고 선등선원 등 세 곳의 선원이 있었어요. 월유선원은 월유봉 아래에 있어서, 남악선원은 지리산을 남악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했고 선등선원은 선의 등불을 계속 전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지요."
이번 하안거에 수좌들의 공부가 어떠냐고 묻자 선사는 "무더위에도 아랑곳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있다"고 전한다.
선등선원에는 선방 경력이 적은 초참 수좌는 별로 없고 구참이 많아서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나를 모르는 데서 중생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이 몸뚱이가 오래 갈 것 같지만 믿을 게 하나도 없는 삼계화택(三界火宅)일 뿐입니다. 조금만 심하게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도 죽을 수 있고 병이나 사고로도 죽을 수 있는 불안한 존재예요. 그러니 나고 죽음이 없는 도리,천지와 더불어 둘 아닌 본래 면목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참선입니다."
흔히 참선은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 방편들 가운데 가장 쉽고 빠른 지름길이라고 한다.
하지만 선원에 발을 들여놓고도 구도의 세월이 10년,20년을 넘긴다면 참선이 과연 쉽고 빠른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선사의 답변은 단호하다.
"내 마음을 아는 것인데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렵지요. 그러나 세속에서도 사업가들이 돈을 벌고 성공하기 위해 하루에 서너시간 잠자며 동분서주하지 않습니까. 영어 하나에 통달하는 데에도 십수년씩 걸리지 않습니까. 하물며 만법의 왕이며 온갖 것에 두루한 내 본성을 찾으려면 그만한 시간과 대가를 각오해야지요."
선사는 무엇이 성공한 삶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젊은 시절 부귀영화를 누리며 편하게 지내다가 늘그막에 빈털터리가 돼 비참한 최후를 맞는 사람이 성공한 것인지,평생을 애쓰며 고생하다가 노년을 여유롭게 보내는 사람이 성공한 것인지….삶은 끝이 좋아야 한다고 선사는 강조한다.
선객들이 참선으로 깨달음을 구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라고 한다.
선사는 참선 공부를 잘 하려면 마음부터 비우라고 충고한다.
요즘 사람들은 인터넷이다 뭐다 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도리어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것.생각이 많을수록 선과는 거리가 멀어지므로 비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복이 있는 사람은 숙세(宿世)부터 베풀고 산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을 지혜의 길로 이끌거나 그들에게 불법(佛法)을 알리는 것,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것 등 베푸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어요. 그러나 베풀지 않으면 언젠가는 가난과 불화,장애의 고통을 받게 되니 지금이라도 잘살려면 보시를 행하세요."
선사는 "처자권속이 있으면 어느 정도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게 불가피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좋은 생각을 일으키라"고 당부한다.
남에게 물 한잔 떠주는 것,낯선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것 등 마음을 잘 쓰는 것(善用其心)이 잘사는 길이라고 거듭 당부한다.
구례=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오래 참선정진한 선객들 가까기에 서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을 느끼기 마련인데,선방에 사람이 없는 것일까.
마침 요사채 쪽에서 나타난 한 스님이 "오늘은 삭발하는 날"이라고 귀띔해준다.
지리산 화엄사 선등선원(禪燈禪院)을 찾아간 날은 마침 음력 6월14일.이곳 선원에서는 하안거 결제일(음력 4월 보름) 전날부터 열흘마다 삭발하기 때문에 그날이 삭발일이었던 것이다.
무명초(無明草)를 자른 스님들이 그간 정진하느라 굳었던 몸을 풀기 위해 산행을 하느라 선방이 비어 있다는 설명이다.
화엄사 대웅전 뒤편의 높다란 산언덕에 자리한 선등선원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남악선원이 있던 자리에 2002년 복원한 선원이다.
복원한 지 3년밖에 되지않은선원이지만 안거 때마다 30명 안팎의 수좌들이 모여들 만큼 인기가 높다.
이번 하안거에는 25명이 정진 중이다.
선원의 바깥 풍경을 몇 장 사진에 담은 뒤 요사채 뒤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선원장 현산(玄山·61) 스님의 거처로 발길을 옮겼다.
5분쯤 걸었을까.
각황전과 함께 화엄사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인 국보 제35호 4사자 삼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석탑 뒤편의 왼쪽 아래에 '성적문(惺寂門)'이라는 편액을 단 탑전이 있다.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이 문을 열고 들어서니 현산 스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19세 때 출가해 지난 64년 비구계를 받은 현산 스님은 출가한 이후 일찍부터 선방만 다닌 수좌 출신.경봉 동산 전강 구산 스님 등 쟁쟁한 선사들을 모신 경력을 갖고 있다.
선사에게 선등선원이라는 이름의 뜻부터 물었다.
"원래 화엄사에는 이 탑전의 월유(月遊)선원,봉천원의 남악선원,그리고 선등선원 등 세 곳의 선원이 있었어요. 월유선원은 월유봉 아래에 있어서, 남악선원은 지리산을 남악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했고 선등선원은 선의 등불을 계속 전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지요."
이번 하안거에 수좌들의 공부가 어떠냐고 묻자 선사는 "무더위에도 아랑곳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있다"고 전한다.
선등선원에는 선방 경력이 적은 초참 수좌는 별로 없고 구참이 많아서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나를 모르는 데서 중생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이 몸뚱이가 오래 갈 것 같지만 믿을 게 하나도 없는 삼계화택(三界火宅)일 뿐입니다. 조금만 심하게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도 죽을 수 있고 병이나 사고로도 죽을 수 있는 불안한 존재예요. 그러니 나고 죽음이 없는 도리,천지와 더불어 둘 아닌 본래 면목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참선입니다."
흔히 참선은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 방편들 가운데 가장 쉽고 빠른 지름길이라고 한다.
하지만 선원에 발을 들여놓고도 구도의 세월이 10년,20년을 넘긴다면 참선이 과연 쉽고 빠른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선사의 답변은 단호하다.
"내 마음을 아는 것인데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렵지요. 그러나 세속에서도 사업가들이 돈을 벌고 성공하기 위해 하루에 서너시간 잠자며 동분서주하지 않습니까. 영어 하나에 통달하는 데에도 십수년씩 걸리지 않습니까. 하물며 만법의 왕이며 온갖 것에 두루한 내 본성을 찾으려면 그만한 시간과 대가를 각오해야지요."
선사는 무엇이 성공한 삶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젊은 시절 부귀영화를 누리며 편하게 지내다가 늘그막에 빈털터리가 돼 비참한 최후를 맞는 사람이 성공한 것인지,평생을 애쓰며 고생하다가 노년을 여유롭게 보내는 사람이 성공한 것인지….삶은 끝이 좋아야 한다고 선사는 강조한다.
선객들이 참선으로 깨달음을 구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라고 한다.
선사는 참선 공부를 잘 하려면 마음부터 비우라고 충고한다.
요즘 사람들은 인터넷이다 뭐다 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도리어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것.생각이 많을수록 선과는 거리가 멀어지므로 비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복이 있는 사람은 숙세(宿世)부터 베풀고 산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을 지혜의 길로 이끌거나 그들에게 불법(佛法)을 알리는 것,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것 등 베푸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어요. 그러나 베풀지 않으면 언젠가는 가난과 불화,장애의 고통을 받게 되니 지금이라도 잘살려면 보시를 행하세요."
선사는 "처자권속이 있으면 어느 정도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게 불가피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좋은 생각을 일으키라"고 당부한다.
남에게 물 한잔 떠주는 것,낯선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것 등 마음을 잘 쓰는 것(善用其心)이 잘사는 길이라고 거듭 당부한다.
구례=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