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매년 감소세를 보여왔던 해외 이민자 수가 올들어 증가세로 돌아섰다.

경기 침체와 정치 불안 등을 이유로 이민을 선택하는 국민이 부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의 성격도 달라지고 있다.

외환위기 여파로 이민 붐이 일었던 2000년에는 경제적 안정을 찾기 위해 한국을 떠나는 '생계형 이민'이 주류를 이뤘다.

최근에는 급변하는 정치상황과 분배를 중시하는 경제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민을 가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것이 이민알선 업계 종사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른바 '사회혐오형 이민'이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4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1~ 6월 미국 이민자 수는 2천4백59명, 캐나다 이민자 수는 2천2백69명, 호주 1백75명, 뉴질랜드 80명 등으로 집계됐다.

하반기에도 비슷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총 이민자 수는 9천9백여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9천5백명보다 4백명가량 늘어 4년 만에 증가세로 반전되는 셈이다.

미국의 경우 2000년 5천2백44명이던 이민자 수는 지난해 4천2백명으로 줄었으나 올해는 4천9백여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민알선 업계에선 지난 99년 이후 중단됐던 비숙련공 이민이 지난해부터 재개되면서 노스캐롤라이나주 플로리다주 등 미국 동부 지역에 닭가공 공장, 통조림 공장 노동자로 취업하는 이민자만 올해 5백명선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민자의 상당수는 대기업 직원과 자영업자며 일부 교수들도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호주 이민도 호주 정부가 억눌러왔던 이민 문호를 지난해부터 다시 넓히면서 지난해 2백56명에서 올해 3백50명 안팎으로 늘어날 것으로 관련 업계에선 예상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올들어 미국에 먼저 정착한 친ㆍ인척의 도움을 받은 미국 연고이민과 일부 자산가들의 캐나다 독립이민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김미현 한마음이민공사 대표는 "지난해 9월부터 월별 해외이민 문의 건수가 3배가량 늘었다"며 "국내보다 한 단계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자녀에게 선진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미국이나 호주행을 꿈꾸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알선업체를 찾은 김모씨(58ㆍ서울 개포동)는 "열심히 노력해서 이나마 살고 있는데 정부는 부자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걷겠다고 나오니 앞날이 불안하다"며 "정치상황도 짜증스럽기 이를데 없어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