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치 시녀 노릇하는 역사학..朴星來 <한국외대 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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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사(近代史)는 한국의 국회에서 다시 써갈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고대사(古代史)는 중국인들이 요리해 줄 모양이다.
우리 고대사, 특히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의 한 부분이라 강조하기 시작한 중국의 소위 '동북공정'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지금 만주(중국 동북지역) 지안(集安) 일대 고구려 유적 지역에는 붉은 색깔의 현수막이 아마 수만장은 널려있는 듯하다.
지난 7월 하순 나의 대학(外大) 사학과 창립 20주년을 기념한 고구려 유적 답사를 따라 돌면서 나는 이 지역의 박물관, 호텔, 그리고 고속도로 진입로 등에 숱하게 덮여있는 붉은 빛의 현수막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고구려 유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된 것을 기념하고 자랑하는 내용이다.
지안박물관 구내 판매대에 전시된 '중국고구려사'(中國高句麗史)가 보여주 듯이 고구려 역사는 이제 더욱 분명하게 중국 역사의 일부가 돼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주 한국의 대통령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과거사 문제를 단편적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지난 역사 쟁점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국가적 사업이 필요하다.
국회에서 잘 다뤄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역사를 바로 씀으로써 경계와 교훈을 삼는 것은 수천년 인류사회의 확고한 가치다"라고도 설파했다.
이미 국회에는 우리 근대사에 관한 법률안이 여럿 올라 있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일단 반가운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오늘의 한국 사회에 우리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드높여 주었고, 이 분야를 공부해온 역사가들에게는 취직 자리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제 한국 근대사의 연구를 위해서도 비슷한 돈과 기구가 생길 것이 기대된다.
아니 비슷한 규모가 아니라 훨씬 대규모 기구가 생기고 막대한 돈이 몰려들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학위를 마치고도 직장을 얻지 못한 수많은 후배와 제자들이 보기에 딱하고 민망했는데, 이 참에 안정된 자리를 얻어 갈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설마 이러한 연구조차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맡아서 해가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결국 역사학도들의 일자리만 늘어날 것이니 이 얼마나 반가운가 말이다.
하지만 중국의 고구려 역사 차지하기나 한국 정치인들의 한국근대사에의 '올인'은 모두가 큰 효과를 내기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중국은 56개 소수민족 문제가 불거질 것을 미리 걱정해 고구려사를 정리하고 있지만, 그 것은 초기의 흥분이 가라앉고 돈이 떨어져가면 스스로 사그라질 수밖에 없는 하나의 '공정'일 뿐이다.
한국의 근대사 바로잡기 역시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더 사소한 문제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역시 돈이 떨어지면 역사가 스스로 이런 연구에 매달릴 이치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역사에 진실이 정해져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또 역사란 '바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닌 듯하다.
물론 역사가는 끊임없이 보다 바르고 진실된 역사를 써보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렇게 탄생한 역사란 언제나 편파적이고 자기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가장 유명한 역사를 정의하는 말로 "모든 역사는 오늘의 역사"란 소리가 높을까! 오늘 나의 필요에 따라 역사는 언제나 새로 쓰여지고, 또 새로 해석된다.
내 눈에는 중국의 정치가 오늘의 문제 때문에 고구려 역사를 재평가하고, 한국의 정치가 오늘의 필요에 따라 근대사를 새로 쓰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평생을 공부해 온 역사학이 정치의 시녀 노릇이나 하게 된 오늘의 세상이 나에게는 그저 서글플 따름이다.
부디 이왕 그렇게 할 바에는 더 많은 역사학자들에게 보다 영구적인 직장이나 마련해 주시기를 당부하고 싶다.
parkstar@unitel.co.kr
그런가 하면 한국의 고대사(古代史)는 중국인들이 요리해 줄 모양이다.
우리 고대사, 특히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의 한 부분이라 강조하기 시작한 중국의 소위 '동북공정'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지금 만주(중국 동북지역) 지안(集安) 일대 고구려 유적 지역에는 붉은 색깔의 현수막이 아마 수만장은 널려있는 듯하다.
지난 7월 하순 나의 대학(外大) 사학과 창립 20주년을 기념한 고구려 유적 답사를 따라 돌면서 나는 이 지역의 박물관, 호텔, 그리고 고속도로 진입로 등에 숱하게 덮여있는 붉은 빛의 현수막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고구려 유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된 것을 기념하고 자랑하는 내용이다.
지안박물관 구내 판매대에 전시된 '중국고구려사'(中國高句麗史)가 보여주 듯이 고구려 역사는 이제 더욱 분명하게 중국 역사의 일부가 돼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주 한국의 대통령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과거사 문제를 단편적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지난 역사 쟁점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국가적 사업이 필요하다.
국회에서 잘 다뤄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역사를 바로 씀으로써 경계와 교훈을 삼는 것은 수천년 인류사회의 확고한 가치다"라고도 설파했다.
이미 국회에는 우리 근대사에 관한 법률안이 여럿 올라 있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일단 반가운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오늘의 한국 사회에 우리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드높여 주었고, 이 분야를 공부해온 역사가들에게는 취직 자리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제 한국 근대사의 연구를 위해서도 비슷한 돈과 기구가 생길 것이 기대된다.
아니 비슷한 규모가 아니라 훨씬 대규모 기구가 생기고 막대한 돈이 몰려들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학위를 마치고도 직장을 얻지 못한 수많은 후배와 제자들이 보기에 딱하고 민망했는데, 이 참에 안정된 자리를 얻어 갈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설마 이러한 연구조차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맡아서 해가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결국 역사학도들의 일자리만 늘어날 것이니 이 얼마나 반가운가 말이다.
하지만 중국의 고구려 역사 차지하기나 한국 정치인들의 한국근대사에의 '올인'은 모두가 큰 효과를 내기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중국은 56개 소수민족 문제가 불거질 것을 미리 걱정해 고구려사를 정리하고 있지만, 그 것은 초기의 흥분이 가라앉고 돈이 떨어져가면 스스로 사그라질 수밖에 없는 하나의 '공정'일 뿐이다.
한국의 근대사 바로잡기 역시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더 사소한 문제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역시 돈이 떨어지면 역사가 스스로 이런 연구에 매달릴 이치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역사에 진실이 정해져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또 역사란 '바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닌 듯하다.
물론 역사가는 끊임없이 보다 바르고 진실된 역사를 써보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렇게 탄생한 역사란 언제나 편파적이고 자기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가장 유명한 역사를 정의하는 말로 "모든 역사는 오늘의 역사"란 소리가 높을까! 오늘 나의 필요에 따라 역사는 언제나 새로 쓰여지고, 또 새로 해석된다.
내 눈에는 중국의 정치가 오늘의 문제 때문에 고구려 역사를 재평가하고, 한국의 정치가 오늘의 필요에 따라 근대사를 새로 쓰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평생을 공부해 온 역사학이 정치의 시녀 노릇이나 하게 된 오늘의 세상이 나에게는 그저 서글플 따름이다.
부디 이왕 그렇게 할 바에는 더 많은 역사학자들에게 보다 영구적인 직장이나 마련해 주시기를 당부하고 싶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