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배 < 예술의전당 사장 ybkim@sac.or.kr >

"미국의 한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일하는 점원은 미소를 머금고 손님들에게 정겨운 웃음을 건넨다.

계산을 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 역시 그녀와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아주 오랜 친구 같았다.

나는 이 광경을 보면서 문득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생각했다.

무뚝뚝한 표정의 점원에게 다정한 말 한 마디 건넸다가는 치한이나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우리나라 점원들에게 미국 슈퍼마켓의 여유로운 일상을 보여주고 그들의 친절을 몸에 익히게 하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미국 유학시절,우연히 우리나라의 한 소설가가 모 신문사에 기고한 '미국기행문'의 일부를 옮겨 적은 것이다.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그 소설가에게 무척 화가 났었다.

동전의 또 다른 면을 보지 못하는 그의 성급함과 그 글을 읽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래,우리 민족은 정말 여유가 없고 성급하긴 해"라고 생각할까봐 속상했다.

미국의 점원은 시간제 수당을 받고 일하기 때문에 물건 담는 일을 서두르거나,길게 늘어선 줄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막 잠든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서둘러 장을 보러 나온 사람이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거나,성격 급한 한국 사람이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든 말든 그의 근무시간은 흐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점원은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게 하려고 바쁘게 움직이느라 제대로 인사도 건네지 못하는 것이라면,우리는 누구의 친절을 더 높이 사야 할까? 편을 나누자는 말이 아니다.

'저렇게밖에 못하나'라는 말을 내뱉기 전에,그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여유를 갖는다면 엉터리 같았던 일들이 나름대로 심사숙고한 아니,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최선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주보기 사랑이라고 했던가? 요즘 각종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나와 다른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비평의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리플에 리플이 계속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원래의 주제는 사라지고 전혀 다른 내용이 논쟁거리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때로는 전문인 못지 않은 지식을 피력하는 아마추어들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글을 읽으며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글에 상처받고 아파할 프로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추어적인,순간적인 생각으로 프로페셔널의 세계를 비난하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믿어주는,진정한 프로들의 마주보기 사랑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