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설원의 끝자락에는 파란 하늘이 맞닿아 있다.

그 반대편에는 눈덮인 연봉들이 이어져 있다.

비스듬한 햇살이 은빛 장관 위로 눈부시게 빛난다.

남극과 자연환경이 흡사한 뉴질랜드 남섬 스노팜.

국내 최초로 극지방을 배경으로 제작되는 영화 '남극일기'의 촬영이 한창이다.

"전부 가만히 있어!" 탐험대장 최도형 역의 송강호가 설원의 정적을 깬다.

한 대원이 크레바스(설벽 사이에 팬 깊은 틈)에 빠지자 나머지 대원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말이다.

카메라는 얼음 덮인 고글을 쓴 송강호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가 급히 트랙 뒤로 물러난다.

임필성 감독의 '컷' 사인이 떨어지자 80여명의 한국과 뉴질랜드 스태프들은 다음 장면 준비에 들어간다.

이 작품은 '도달 불능점'(남극 대륙 해안에서 가장 먼 지점으로 지구 최저기온인 영하 80도를 기록한 적이 있다)으로 떠난 여섯 탐험대원의 이야기다.

하지만 극지방을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다른 영화들처럼 인간의 위대한 도전기는 아니다.

'아무도 갈 수 없는 곳'을 향한 끝없는 인간 욕망의 실패기다.

극한 지역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을 파헤치면서 자기만의 도달불능점을 향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 보겠다는 게 기획 의도다.

탐험대원들은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며 결국엔 공포와 대면한다.

송강호는 "남극이란 무형의 대륙이 하나의 인격체처럼 묘사된다"며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직접 남극의 상황을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촬영 중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우유빛 세계가 펼쳐지는 '화이트 아웃'을 경험했을 때 흡사 극중 탐험대원들처럼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고 했다.

그가 맡은 도형은 전작 '효자동 이발사'의 소시민 성한모와 달리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다.

그러면서 강박감과 모험심이 공포로 변질되는 과정을 겪는다.

도형에게 도달불능점을 향한 도전이 삶의 전부라면 유지태가 맡은 민재에게 도달불능점은 그냥 지도상의 한 점일 뿐이다.

유지태는 "민재는 탐험대장의 잃어버린 자아로 자신의 귀감이었던 대장이 변질되는 것을 보고 자기분열을 겪는다"고 귀띔했다.

극한상황에 내몰린 배역을 소화해내기 위해 유지태는 지난 2개월동안 몸무게를 무려 23㎏이나 줄였다.

지난 5월15일 촬영이 시작된 이 작품은 지금까지 40%남짓 제작이 진행됐다.

스노팜 촬영부분은 전체의 55% 정도이며 나머지는 국내에서 세트로 촬영된다.

제작사는 싸이더스.

총 제작비 80억원이 들어가는 대작으로 내년 상반기 개봉될 예정이다.

스노팜(뉴질랜드)=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