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최대 석유기업인 유코스 사태의 파장이 수그러들 줄 모르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러시아의 국제 석유패권 장악 시나리오에 이용되고 있다는 '음모론'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일간지 선데이타임스는 9일 "최근 러시아 정부 및 법원이 유코스사태와 관련해 내린 결정들은 일관성이 없다"며 "누군가 국제유가와 유코스 주가를 조작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루 8백만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세계 2위의 산유국이며, 유코스는 러시아 전체 산유량의 20%(하루 1백70만배럴)를 차지하는 세계 4위 석유업체다.

◆ 확산되는 '유코스 음모론'

지난달 말 러시아 법무부는 유코스의 2000년도 세금체납액인 34억달러의 납부시한을 1개월 연장시켜 줬으나, 2일 모스크바 법원은 유코스의 체납 벌과금 면제결정을 내렸다.

국제 석유시장은 이를 유코스의 '승리'로 인식했고, 급등세를 보여온 유가도 곧 진정될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법원 결정이 나온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러시아 국세청이 유코스의 2002년도 체납 세금을 정산하기 위해 감사에 들어가겠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유가는 요동치기 시작했고, 세계 기준 유종인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순식간에 배럴당 43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4일에는 러시아 법무부가 체납세금 변제를 위해 취했던 유코스 은행계좌 동결조치를 해제한다고 밝히면서 치솟던 유가가 진정되는 등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인 5일 법무부는 "계좌동결 해제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돼 철회한다"는 통지서를 유코스측에 전했다.

유가는 다시 뛰었다.

이어 6일 모스크바 법원은 유코스 자회사에 대한 자산 압류가 불법이라고 판결, 유코스의 손을 들어주는 듯했다.

그러나 9일 철도청은 유코스에 대한 신용공여를 중단하고 석유수송을 거부키로 결정, 유가는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석유 중개업체 트로이카 다이얼로그사의 카차 키나벨리제 애널리스트는 "유코스에 대한 정부 결정의 잇따른 번복은 러시아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제치고 국제석유시장을 지배하려는 음모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잇단 돌발 악재 가능성

오는 15일로 예정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 소환투표 역시 유가향방을 가늠할 주요 변수로 꼽힌다.

세계 5위 산유국이면서 중남미 유일의 OPEC 회원국인 베네수엘라는 하루 1백40만배럴, 미국 전체 소비량의 17%를 수출하고 있다.

이번 소환투표에서 차베스 대통령이 승리한다면 정치불안이 해소돼 국제 석유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겠지만, 차베스가 패할 경우 정치적 혼란 가중으로 원유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라크에서 시아파 강성 지도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를 따르는 무장세력이 9일 남부 바스라의 석유 기반시설을 공격하겠다고 위협, 원유 생산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던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나이지리아 등 다른 석유공급국들의 정국 혼란과 투기세력의 가세, 미국 정유시설 가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멕시코만의 허리케인 피해 등도 고유가를 부채질하고 있다.

와초비아 증권의 제이슨 셴커 애널리스트는 "OPEC은 이미 시장 통제력을 상실했다"며 "수일 내로 유가는 배럴당 50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