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외 간판을 영문으로만 표기하거나 영문에 비해 한글을 현저히 작게 쓰면 불법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는 12일 한글학회 등이 "국민은행과 케이티가 옥외광고 등을 하면서 기업명이나 슬로건을 'KB''KT'와 같이 영어로만 사용해 국어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끼쳤다"며 국민은행과 케이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 회사들이 외부 간판에 영문만 표기한 것은 한글 병기를 규정한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을 위반한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한글만으로도 사회생활에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게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국가의 의무이지 개인이나 사기업이 준수해야 할 의무는 아니다"며 "피고 회사들이 손해배상할 책임은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글 병기 규정은 여러 사람에게 자신이 의도한 바를 쉽게 설명하고 알리기 위한 것"이라며 "옥외광고물 중 외국 문자만 기재했거나 한글을 현저히 작게 적은 것은 한글병기조항 위반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한글 병기조항이 한국어의 사용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조항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