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욱 과장은 지난 92년 병무청에서 9급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공무원인 부인을 만났다.

어느날 부인은 적금 4백만원을 건네며 유 과장에게 주식투자를 권했다.

"친척 가운에 주식으로 큰 돈을 번 사람이 있으니 당신도 욕심 내지 말고 한 번 해보라"는 얘기였다.

누구나 그렇듯 주식투자 초기엔 '짭짤한 수익'을 냈다.

한 달 만에 주식으로 월급 이상을 번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주식은 만만치 않았다.

결국은 적금 4백만원을 다 날리고 말았다.

◆ 파멸의 초입(初入)에서

박봉을 아끼고 아껴 모은 적금을 잃고 나니 오기가 발동했다.

친구들과 함께 경마장을 찾게 됐다.

파멸의 시작이었다.

'잃고 따고'를 반복하다 결국은 카드 빚만 잔뜩 졌다.

'경마는 아니다' 싶어 대출을 받아 다시 주식을 시작했다.

'작전주' 위주로 매매를 했다.

한때 원금의 두 배 가까이 번 적도 있었지만 결국 작전의 끝은 깡통이었다.

한방에 크게 먹을 수 있는 것은 '그래도 경마뿐'이란 생각에 다시 경마장을 찾게 됐다.

가끔씩은 타고난 베팅감각을 발휘, 하루에 10배가 넘는 배당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환급률(베팅액 대비 돌려받는 총금액)이 70∼80%에 불과한 경마의 속성상 결국은 돈은 '제로(0원)'에 수렴해갔다.

'준(準)노름꾼' 생활이 지속되면서 결국 빚은 2억원으로 늘었다.

그런던중 첫째딸 '슬기'가 태어났다.

◆ 파생 아니면 죽음이다

아이가 태어나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주식과 경마로 망가진 인생,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부인의 동의를 얻어 공무원 생활을 접고 본격적인 개인투자자로 변신하게 됐다.

우선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의 보증금 1천만원짜리 단칸방으로 집을 옮겼다.

친지, 친구와의 연락도 모두 끊었다.

태어나서 '특별시'를 벗어나 '면'에서 살긴 이때가 처음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친지로부터 '마지막으로' 빌린 종잣돈 4천만원이 전부였다.

이때 유 과장은 투자 종목을 '선물ㆍ옵션'으로 바꿨다.

파생은 세력들의 '장난'이 주식에 비해 덜할 뿐더러 장이 오르거나 내릴 때 양방향에서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선물ㆍ옵션 투자를 시작하면서 그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아홉 글자'를 붙여놨다.

'이것 아니면 죽음이다.'

◆ 재야의 고수

전업 투자자로 변신한지 석 달 만에 투자원금(4천만원)을 벌었다.

돈을 벌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수익관리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유 과장은 그날 벌어들인 돈은 모두 즉시 찾아 은행에 맡겼다.

예컨대 4천만원으로 선물에서 하루 1백만원의 수익을 냈다면 1백만원을 곧바로 은행에 맡긴 채 다음날에는 다시 4천만원으로 매매를 시작했다.

만약 원금의 10% 이상을 잃었을 때는 은행에 맡겨 둔 돈을 찾아 다시 원금을 채워 넣었다.

유 과장은 "선물·옵션은 많이 따는 것보다 잃을 때 적게 잃는게 더 중요하다"며 "투자원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게 가장 확실한 수익관리 방법"이라고 말했다.

유 과장이 취한 매매전략은 크게 네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일명 '각도 매매'.

이는 선물 그래프의 각도가 가파르게 급등하거나 급락했다가 그 반대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일 때 선물이나 옵션을 매수하거나 매도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선물이 단기간에 급등한 후 서서히 떨어질 때를 매수타이밍으로, 선물이 급락한 후 서서히 오를 때를 매도 타이밍으로 잡는다.

두 번째 방식은 미국시장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유 과장은 "많은 초보투자자들이 전날 나스닥이 폭등하면 다음날 선물을 매수하지만 실제로 나스닥이 폭등한 후 우리 주식시장에서 음봉(시가에 비해 하락)이 날 때가 더 많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비싸게 사서 더 비싸게 파는 전략'이다.

"개인투자자의 상당수가 (매수)이익실현을 한 후 선물ㆍ옵션 가격이 더 오르면 과감히 매수하지 못하고 가격이 떨어지길 기다리지만 이는 잘못된 투자법"이란게 그의 설명이다.

이밖에 외국인 현물매매동향을 체크할 때는 전체 매매동향을 보지 않고 '전기전자 업종 매매현황'을 주의 깊게 참조한다.

이같은 '수익관리법'과 '매매전략'에다 '타고난 베팅감각'까지 더해 그는 '재야의 고수'로 필명(슬기아빠)을 날리게 된다.

이후 키움닷컴증권이 주최한 선물옵션 투자대회에서 연거푸 1위와 4위를 차지, 결국 지난 3월 증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된다.

'재야의 고수'가 제도권으로 입성한 것이다.

◆ 하우스장(長)은 승부를 걸지 않는다

유재욱 과장은 개인투자자 생활 3년 만에 10억원 남짓한 재산을 모았다.

3년 전 보증금 1천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살던 때와 비교하면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이룬 셈이다.

'개인은 무조건 백전백패'라는 파생시장에서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이에 대해 유 과장은 "노름판에서 하우스장은 결코 승부를 걸지 않는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항상 돈을 버는 하우스장이 무리하게 노름에 참여하는 일은 없다"며 "개인투자자들이 첫 번째로 피해야 할 것이 무리한 베팅"이라고 말했다.

그는 "큰 수익을 내는 데 승부를 걸지 말고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데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 과장은 또 "파생시장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개인투자자는 1백명중 1명"이라며 "가능한한 개인투자자들에게는 선물ㆍ옵션 투자를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