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의 일본군 헌병 복무와 이 사실을 뒤늦게 시인한데 따른 `거짓말 파문'으로 위기에 몰린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이 당안팎의 거센 사퇴압력에도 불구, 퇴로를 찾지 못한채 거취를 고심중이다.

여권 핵심부로부터 "가볍게 처신해선 안된다"는 당부가 있었고 천정배(千正培)원내대표가 "(신의장) 부친 문제가 아들문제로 연좌제가 돼선 안된다"며 엄호에 나섰지만, 당 안팎의 전반적인 기류는 사퇴 불가피쪽으로 기울었다.

선친의 행적에 대한 신 의장의 진술 번복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거세고 신 의장의 선친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뒤를 이으면서 신 의장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이 장기화될 경우 범여권 차원에서 추진중인 과거사 청산 작업 자체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김원웅(金元雄) 의원은 18일 "이 문제로 역사 바로세우기가 흔들려선 안되며,천 원내대표가 신 의장이 부친의 친일행위를 숨긴 것이 친일진상규명법이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순수한 의도라고 했는데 적절한 태도가 아니다"면서 "신 의장을 적절치 못한 방법으로 비호하면 자칫 친일진상규명법이 당리당략적 의도에서 추진되는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며 사퇴 불가피론을 폈다.

박영선(朴映宣) 의원은 "`논개'가 될 것이냐 아니냐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고 다른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고, 한 재선의원은 "신 의장의 과오는 아니지만 용납하기는 어렵다"며 "일제시대에 헌병 오장을 지내다가 해방이후 이승만 정권하에서 경찰이 됐다면 친일의 대명사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처럼 사퇴불가피론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 신 의장이 막판까지 고심하는 이유는 단순히 개인적인 거취 결정으로만 상황이 종료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신 의장 선친 문제로 과거사 정국에서 수세에 몰린 여권으로서는 신 의장의 사퇴를 친일진상규명법 개정 등 과거사 청산 작업을 힘있게 추진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아야 하는 고민을 안고 있다.

이와 관련, 박영선 의원은 "신 의장이 사퇴한 이후 부메랑이 있다"며 "한나라당이 논평 등을 통해 `우리시대의 아픔'이라면서 감싸고 도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고 말했고, 우리당 핵심당직자는 "과거사 청산 작업에 한나라당을 함께 참여시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퇴 시점과 메시지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의장의 또다른 고민은 자신이 사퇴한 이후 당 지도체제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것인지가 불확실하다는 데 있다.

당내에서는 지난 1월 전당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이부영(李富榮) 상임중앙위원이 승계하는 방안, 비상대책기구를 만들어 정기국회를 치른뒤 내년초 전당대회를 여는 방안, 비상대책기구 구성후 연내에 조기 전당대회를 소집해 지도체제를 정비하는방안 등 3가지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임채정(林采正) 의원은 "직선 상임중앙위원 5명중 3명이 그만두게 되면 비상대책기구를 만들어서 곧 개원할 정기국회를 치르고 내년초 전당대회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힌 반면, 우원식(禹元植) 의원은 "비상대책위를 만들어도 되고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이 임시 관리해도 된다"며 "꼭 현역의원이 당의장을 하라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 의장 사퇴 이후 지도체제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신 의장이 사퇴를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실제 사퇴 시점은 당내 의견 조율이 마무리된 이후로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