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은 18일 경제5단체와 간담회를 갖고 `경제회생'에 대한 협조를 당부했지만, 정부와 여당의 경제정책에 대한 재계의 `뿌리깊은 불신'을 재확인해야만 했다.

지난달부터 재계 인사들과 만나 시장경제 원칙고수를 천명해온 천정배(千正培)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이날 간담회에서도 시장경제 원칙을 강조했지만, 재계는 또다시 의구심을 표시했다.

이수영(李秀永) 경총회장은 "경제가 어려울 수록 친기업적으로 가야하지만 기업들에게는 그렇게 보여지지 않고 있다"며 "반기업정서를 해소하고 투자 분위기를 진작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이 회장은 이어 "경제가 중요하지만 불행하게도 여러가지 이슈가 많이 생긴 것같다"며 "내셔널 어젠다(국가적 의제) 중에서 다른 것들은 조용하게 할 수 없느냐"고 반문했다.

현명관(玄明官) 전경련 부회장은 아파트 원가공개와 대기업 총수의 친인척 지분공개, 공직자 재산형성과정 공개, 대기업 이사회회의록 공개 등 정부와 우리당이 추진한 정책들을 열거한 뒤 "이 같은 정책이 과연 시장경제 작동원리와 맞는지 재검토를 부탁드린다"고 주문했다.

현 부회장은 이어 "경제살리기의 알파와 오메가는 기업의 투자인데 기업투자를촉진시킬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며 "자산규모가 크면 클수록 각종 규제가 더해지는데 어떤 기업이 기업할 의욕이 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투자하는 사람은 기업가지 공무원이 아니다"라며 "그렇다면 기업하는사람들 말을 들어야하는데 (정부는) 기업하는 사람들이 투자 저해요인을 이야기해도공무원의 리포트와 각종 위원회의 의견을 내세워 반대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김재철(金在哲) 무역협회장은 경제를 타는 모닥불에 비교한 뒤 "모닥불은 자연스럽게 타도록 해야지 자꾸 건드리면 불이 잘 안붙는다"며 "우리나라는 기업인들을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기 때문에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가 손상된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은 이어 출자총액제도 철폐와 기업의 사모펀드 허가, 골프장 규제 철폐,연기금투자 활성화 등 기존의 요구사항들을 다시 제기했다.

이에 대해 천정배 대표는 "시장경제 원리와 반기업정서를 말씀하시는데 이는 정부나 여당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시장경제 원칙을 확고하게 지키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 안정적이고 일관성 있는 여당의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천 대표는 이어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가 시장경제 원칙하고 양립하지 않는다고말씀해주시면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희선(金希宣) 정무위원장은 "출자총액제한 제도에 대해 파악한 바에따르면 재벌들은 이 제도에 상관없이 투자여력이 있다"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주장하는 것은 다른 배경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일축했다.

강봉균(康奉均) 의원도 "기업들이 시민단체를 직접 만나 설득해야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참석자들의 발언요지.

▲천정배 대표 = 시장개혁에 어긋난 정책에 대해선 신중하게 접근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당장 폐지하기 어렵다. 이미 차세대성장동력군에 대해 많은 예외가 인정되고 있고, 정부의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에서도 자율적장치가 마련되면 폐지하도록 돼있다.

▲현명관 부회장 = 국회 정무위에서 공정위와 재계 관계자를 출석시켜 왜 출자총액제도가 문제인지 설명을 들어달라. 기업도시에 대해서는 규제를 철저하게 철폐해야한다. 현재 경제특구 정도의 세금감면은 모자란다.

대기업 보유 자금과 시중 유동자금을 국내투자와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대기업에사모펀드를 허가해야한다. 현재 주식시장은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통로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오히려 자기 주식을 사서 경영권을 방어하는 자금퇴출장이 됐다. 본래기능을 회복토록 활성화방안을 마련해야한다.

▲김효성 대한상의 부회장 = 교육과 의료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중산층 소비진작위해 근로소득세 구간을 조정해야 한다. 현행 소득세는 1천만원,1천만~4천만원, 4천만~8천만원으로 구간이 나눠져 있는데, 1천만원을 1천250만원으로 상향하고, 4천만원은 5천만원, 8천만원을 1억원으로 상향 조정해서 세금부담을경감시켜야한다.

골프장 건설은 고용에 긍정적 효과를 준다.빨리 인허가가 날 수 있게 해야 한다.

▲김재철 무역협회장 =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야한다.외국은 모두 짝짓기에 몰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국내 문제에 몰두한다. 2~3년만지나면 혼기 지난 처녀총각처럼 짝짓기가 힘들 것이다.

▲이수영 경총 회장 = 정부의 목적이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 균등이라고 명확하게 천명해야한다. 당 대표 지도부뿐 아니라 재계가 국회에서 의원들과 분과위원회식으로 정례적인 회의를 열었으면 좋겠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