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첩보요원이 주인공 본(맷 데이먼)을 심문한다.

요원이 상부로부터 전화를 받는 순간 본은 요원의 급소를 쳐 혼절시킨 뒤 그의 휴대폰에 도청장치를 부착하고 급히 방문을 빠져 나온다.

전광석화 같은 이 액션장면은 불과 4초만에 이뤄진다.

관객들이 영화 속에서 피사체를 인지하는데 보통 3초 정도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여러 동작이 합쳐진 이 액션은 일반 영화의 경우 10초 이상 걸렸을 것이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스릴러 '본 슈프리머시'는 정교하게 연출된 상황에서 펼쳐지는 압축된 액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본 아이덴티티'의 속편격인 이 작품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본이 기억을 찾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는 정보당국에 접근해 가는 이야기다.

전편보다 각본은 더 치밀해졌고 액션에는 속도가 붙었다.

그린그래스 감독은 특유의 카메라 들고찍기 방식을 도입해 사실성을 극대화했다.

전직 첩보원인 본은 정통 스릴러에 등장하는 자동차 추격신,암살자와의 격투,함정 탈출 등에서 첩보원의 행동수칙을 철저하게 구사함으로써 군더더기 없는 액션을 보여준다.

그는 목숨을 보전하려는 목적으로 적을 격퇴하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내던짐으로써 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한 때 자신이 몸담았던 정보당국은 그를 제거하려 한다.

이 같은 설정은 본에게 도덕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액션에 긴박감을 더해준다.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21세기 첩보원 본은 20세기의 제임스 본드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군중 속에서 익명의 존재로 살며 대중교통 수단인 택시와 지하철을 이용한다.

정장 대신에 허름한 바지와 검정색 티셔츠만 입고 표정은 언제나 굳어 있다.

웃음띤 얼굴은 죽은 애인과 찍은 사진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세안(洗眼) 혹은 세수(洗手) 행위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첩보원 시설 저지른 죄업을 씻고픈 본의 심경과 연관돼 있다.

20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