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스트레스 탈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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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엄마 몰래 게임하느라, 엄마는 적당히 눈 감느라,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이기심 내지 무능을 참느라,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잔소리와 눈총을 견디느라 힘겹다.
아내는 주변머리 없는 남편, 남편은 바깥사정 모르는 아내 때문에, 취직이 안된 아들은 부모, 부모는 대학 나와 노는 자식 눈치 보느라 가슴이 탄다.
원인은 다르지만 누구나 갖가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말을 하자니 자칫 비뚤어지거나 상처받을까봐 못하고, 참자니 답답해 미칠 것 같다.
이겨낼 수 있으면 힘이 된다지만 스트레스를 약으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남 모르는 콤플렉스처럼 없애기 어려운 것도 있고, 괜히 말했다 두고두고 약점이 잡힐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크다.
스트레스는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이자 독이다.
제때 퇴치하지 못하면 두통이나 우울증은 물론 고혈압 심장병, 심지어 암을 유발할지도 모른다는 마당이다.
실제 취업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면역기능을 비교했더니 후자는 면역세포가 3천5백개 이상인데 전자는 1천6백여개밖에 안됐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털거나 극복해야 한다는 건데 문제는 방법이다.
술 담배 고스톱으로 풀려는 사람이 많지만 어느 것이건 후유증이 남는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을까.
신경정신과 개원의협의회가 매월 18일을 '스트레스 탈출의 날'로 삼고, 첫행사로 '북어 두드리기' '박 깨트리기' 등을 마련했다는 소식이다.
옛 여인들은 빨래방망이를 두드리면서 가슴 속 온갖 응어리를 풀었다고 하거니와 한동안 국내 길거리엔 망치로 두더지를 때려잡는 기구가 있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보듯 뱉고 싶은 말을 하거나 뭔가 깨버리면 속이 후련해진다.
그러나 때리고 부수는 건 모르는 새 버릇이 될 수도 있다.
자신과 가족 일에 대한 기대가 크고 성취욕구가 강할수록 스트레스도 심해진다.
'스트레스 없이 발전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견딜 수 없으면 큰일난다.
북어를 패고 달리는 것도 좋지만 조용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버릴 건 버리고, 잊을 건 잊고, 포기할 건 포기하는 것도 괜찮다 싶다.
용서하는 건 더 낫고.
세상 모든 용서는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니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아내는 주변머리 없는 남편, 남편은 바깥사정 모르는 아내 때문에, 취직이 안된 아들은 부모, 부모는 대학 나와 노는 자식 눈치 보느라 가슴이 탄다.
원인은 다르지만 누구나 갖가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말을 하자니 자칫 비뚤어지거나 상처받을까봐 못하고, 참자니 답답해 미칠 것 같다.
이겨낼 수 있으면 힘이 된다지만 스트레스를 약으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남 모르는 콤플렉스처럼 없애기 어려운 것도 있고, 괜히 말했다 두고두고 약점이 잡힐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크다.
스트레스는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이자 독이다.
제때 퇴치하지 못하면 두통이나 우울증은 물론 고혈압 심장병, 심지어 암을 유발할지도 모른다는 마당이다.
실제 취업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면역기능을 비교했더니 후자는 면역세포가 3천5백개 이상인데 전자는 1천6백여개밖에 안됐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털거나 극복해야 한다는 건데 문제는 방법이다.
술 담배 고스톱으로 풀려는 사람이 많지만 어느 것이건 후유증이 남는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을까.
신경정신과 개원의협의회가 매월 18일을 '스트레스 탈출의 날'로 삼고, 첫행사로 '북어 두드리기' '박 깨트리기' 등을 마련했다는 소식이다.
옛 여인들은 빨래방망이를 두드리면서 가슴 속 온갖 응어리를 풀었다고 하거니와 한동안 국내 길거리엔 망치로 두더지를 때려잡는 기구가 있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보듯 뱉고 싶은 말을 하거나 뭔가 깨버리면 속이 후련해진다.
그러나 때리고 부수는 건 모르는 새 버릇이 될 수도 있다.
자신과 가족 일에 대한 기대가 크고 성취욕구가 강할수록 스트레스도 심해진다.
'스트레스 없이 발전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견딜 수 없으면 큰일난다.
북어를 패고 달리는 것도 좋지만 조용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버릴 건 버리고, 잊을 건 잊고, 포기할 건 포기하는 것도 괜찮다 싶다.
용서하는 건 더 낫고.
세상 모든 용서는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니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