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런 공연 죽었다 깨도 안 되겠지?"

"신체 구조부터 다르잖아,다리도 짧고,허벅지도 굵고."

26년 전,1978년 내한한 영국로열발레단의 환상적인 공연을 보고 나서던 관객들의 대화였다.

극장 로비 여기저기에 꽂혀있던 국립발레단의 공연전단이 그날따라 작아 보였고,그들의 공연이 상대적으로 초라할 것이라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정말 우리에겐 불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지난 8월 3일,시카고의 한 극장에서는 탄탄한 기본기와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을 선보이며 2천5백여명의 관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무용단이 있었다.

그 단체가 바로 우리나라 국립발레단이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완벽한 기술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회전 동작을 보면서 공연 내내 내 가슴은 뿌듯한 감동에 벅찼고,김주원과 이원철의 완벽한 '2중주'가 관객들에게 최고란 찬사를 받았을 때는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보다 더 쉽고 확실하게 한국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잘 알지도 못하는 동양의 작은 나라,한국에서 온 단체에게 보내는 그들의 박수는 끝없이 이어졌다.

어쩌면 예술만큼 보는 이의 선입견이나 태도가 감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손님에게 거실의 추상화가 미대생 딸이 그렸다고 하면 "잘 그렸네" 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피카소 작품이라면 감동의 얼굴을 하고 오랜 시간 그림 앞에서 서성거리더라는 후배의 얘기를 가벼운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에는 왠지 석연찮은 마음이 든다.

마찬가지로 유명 외국단체나,연주자의 실연을 볼 때는'대단 할 거야'라며 설레는 마음으로 관람하지만,우리의 예술가들에게는 '얼마나 잘하나 보자'며 팔짱부터 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실수에는 '그러면 그렇지'라며 냉랭한 반응을 보이지만 외국 단체의 실수에는'어쩜! 너무 인간적이야'라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것은 아닌지….

세계적 수준의 외국초청단체에 대한 우리들의 무조건적인 선입견을 이제 우리 스스로 깨야한다.

그들이 오늘 날 세계정상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보이지 않는 피와 땀을 지켜봐 주고,뜨거운 격려와 믿음을 주었던 관객들이 함께 하였음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있는 그대로를 바라보자.벌써 세계 정상에 우뚝 섰거나 직전 단계에 있는 훌륭한 우리 단체가 한 두개가 아니라는 사실이 바로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