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무부처 공무원하고 중소기업 사장이 같이 가서 자금신청을 해도 서류 미비를 이유로 퇴짜 맞고,급히 필요한 설비를 수입해야 하는데도 "공문" 타령을 들어야 하고..한국에서 중소기업 하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걸 현장 체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산업자원부 중소기업담당 공무원들이 최근 "중소기업행정 현장체험단"을 구성해 남동공단 시화공단 울산공단 등 전국 주요 공단지역 기업들을 찾아 몸으로 부딪치며 느낀 소감이다.

광주광역시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R사를 방문했던 산자부 산업기계과 P사무관(34).그는 "설비자금을 빌리려는 사장과 네 곳을 같이 돌아다녔는데 서류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결 같이 퇴짜를 맞는데 내가 다 짜증이 나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심지어 정부가 출자한 보증기관에서도 요즘 같은 불황에 어떻게 기술력만 믿을 수 있겠느냐며 손을 내젓더라는 것.P사무관은 "요즘 중소기업들이 죽겠다고 아우성 치는 까닭을 확실히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R사는 자동차용 에어컨 부품을 만드는 벤처기업으로 월 매출 2억원 중 수출이 1억7천만원에 이르는 수출기업.P사무관은 "기술력이 탄탄한 이 회사가 늘어나는 주문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설비 확장이 시급한데도 결국 돈을 빌리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찾아간 곳은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중소기업진흥공단,전남도청이었다.

이들 기관은 신용평가에 필요한 매출자료를 요구했지만 벤처기업이다보니 자료가 충분치 않아 번번이 퇴짜를 맞은 것이다.

매출실적을 쌓은 뒤 3∼4개월 뒤에 다시 오라는 말만 들었다.

수원에 있는 광센서장치 제작업체인 B사를 대신해 관공서에서 민원을 신청하는 업무를 체험한 산자부 산업구조과 P사무관(28)도 비슷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얼마 전 독일에서 열린 세빗(CEBIT) 전자박람회에서 인도 바이어로부터 광센서 장치를 수입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검사자료 도입 관련 신고를 하러 관공서 몇 곳을 들렀다.

"산자부 사무관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철도청에 가서 광센서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는데도 돌아온 대답은 '지금은 곤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철도청 내에서만도 관련 팀·부서가 10개에 이른다며 산자부에서 정식으로 협조공문을 보내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는 "같이 갔던 사장님이 그나마 이렇게 길을 뚫은 것만해도 너무 고맙다고 하는데 제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전력시장과에 근무하는 L사무관보는 울산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인 F사를 방문해 직접 용접작업에 참가해 보고 열악한 근무환경을 실감했다.

"용접후에 하는 스크래핑(그라인드)작업을 옆에서 도와줬는데 방진 마스크를 썼는데도 숨이 막힐 정도로 분진이 심했습니다.

그렇게 중소기업들의 근무환경이 나쁜 지 몰랐습니다."

전국 20개 중소기업으로 나가 본 경제 관료들은 한결같이 "그동안 정부의 산업정책이 기업 현장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상태에서 이뤄져왔는지를 되새기게 된 기회였다"고 입을 모았다.

각 부처들이 때만 되면 다양한 지원책을 내고 있지만,기업 현장에 제대로 스며드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는 얘기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