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梁奎煥 한국생명공학 연구원장>

오늘날 인류는 의료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평균 수명이 80세에 이르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난치성 질환도 많이 있다.

의학자 및 생명공학자들은 향후 새로운 패러다임의 재생의학(regenerative medicine)을 통해 이러한 난치성 질환들이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생의학의 실현은 대체장기이식,유전자 치료,세포치료 등 새로운 의료기술의 개발에 의해 가능하다.

배아줄기세포는 이들 미래 의료기술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이에 따르는 막대한 경제적 잠재가치 때문에 세계적으로 치열한 기술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성과가 발표된 이후,기술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줄기세포 문제가 새로운 대선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존 케리 민주당 대선후보 진영이 조지 부시 대통령의 줄기세포 연구 제한정책을 폐지할 것이라고 하자 백악관도 부시 대통령이 난치병 치료를 위해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한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이 지난 달 생명공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방편으로 발족시킨,6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포함된 연구 자문단은 중국이 인간 배아 연구 환경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기 때문에 연구비를 중점 투입하면 이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최근 영국 정부는 인간배아에서 당뇨병과 파킨슨병 등의 치료에 필요한 줄기세포를 만들겠다는 뉴캐슬대학의 신청을 받아들여 유럽에서는 최초로 인간배아복제를 승인했다.

일본은 임상연구가 아닌 기초연구에 한해 인간 배아복제를 허용했다.

모든 과학은 인간에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제공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줄기세포연구에 대한 생명윤리 논쟁이 치열하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는 황우석 교수가 있다.

모든 국민이 1백% 찬성하는 과학연구는 결코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과학이 처한 사회적 여건과 과학기술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사회적 윤리적 안전장치다.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비롯한 생명공학 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앞선 분야 중의 하나이고 불치병과 난치병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가장 가능성 있는 대안이며,우리가 꿈꾸는 2만달러 시대를 앞당길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분야 중 하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동차 산업을 일으킨 영국은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잘못된 조례를 제정함으로써 미국에게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겼다.

당시 시속 40km였던 자동차의 최고속도를 도심에서는 시속 3.2km,다른 지역에서는 6.4km 이하로 제한하고 붉은 깃발(적기)을 든 사람이 자동차 앞에서 자동차를 인도해 보행자들에게 알리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생명윤리학회가 영국 과학전문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황 교수팀의 연구성과에 대해 윤리문제를 제기한 것은 국내 생명공학계의 발목을 잡는 일이며,집안 문제를 밖에서 해결하려는 것으로 국내 생명공학계의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한국생명윤리학회의 지적이 무익하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시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안 없이 윤리적 잣대만으로 연구를 반대하거나 사회적 합의를 주장하는 한국판'적기조례(赤旗條例)'다.

이제는 과학자들이 생명윤리법의 틀 안에서 더 이상의 윤리적 공방 없이 합법적으로 마음 편하게 연구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때다.

국내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우리나라의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묵묵히 연구에 전념하는 과학자들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가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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