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과 필드의 절대 강자는 없다.'

아테네올림픽의 꽃 육상이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한 가운데 초반부터 무명 스프린터 율리야 네스테렌코(벨로루시)의 여자 100m 우승으로 연쇄 이변의 조짐이 일기 시작하면서 '수성'에 나섰던 디펜딩 챔피언들이 잇따라 좌절의 쓴맛을 보고 있다.

7개 종목 결승이 치러진 22일(이하 한국시간) 현재 금메달의 주인공은 모두 새얼굴로 바뀌었다.

가장 먼저 올림피아에서 열린 남녀 포환던지기 우승자 유리 빌로노그(우크라이나)와 이리나 코르차넨코(러시아)는 4년 전 시드니올림픽 때 메달권에도 근접하지못했으나 헤라 여신의 정기를 받아 괴력을 발휘했다.

반면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르시 하르주(핀란드)와 야니나 코롤치크(벨로루시)는 결승 스타트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남자 10,000m에서 올림픽 3연패에 도전했던 '트랙의 신화'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는 9살 어린 자신의 제자 케네시아 베켈레(에티오피아)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를 내준 채 5위로 쓸쓸히 스타디움을 떠났다.

48년 런던과 52년 헬싱키올림픽 10,000m에서 연속 우승한 '인간 기관차' 에밀자토펙(체코)의 신화를 뛰어넘겠다던 게브르셀라시에의 꿈은 세월의 무게 앞에 무너져 내렸다.

시드니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초대 챔피언에올랐던 '여자 부브카' 스테이시 드래길라(미국)도 33살의 나이가 도약을 가로막은듯 4m30을 넘는 데 그쳐 예선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20대 초반의 러시아 미녀 듀오 옐레나 이신바예바와 스베틀라나 페오파노바에맞서 홀로 경쟁하기에는 처음부터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여자 100m에서는 네스테렌코의 우승으로 80년 모스크바올림픽 이후 24년 간 지켜온 미국의 아성이 무너졌다.

도로 레이스 첫 종목인 남자 20㎞ 경보에서도 시드니올림픽 1위 로베르트 코르제니우스키(폴란드)가 50㎞에 전념하느라 불참한 가운데 8년 만의 정상 탈환을 노린세계기록 보유자 제퍼슨 페레스(에콰도르)가 힘겨운 레이스를 펼쳤으나 4위에 그쳤다.

디펜딩 챔피언들의 몰락과 함께 10년 넘게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온 노장 스타들도 하나둘씩 스타디움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44살의 나이에 국적을 바꿔 7번째 올림픽 도전에 나선 '비운의 흑진주' 멀린 오티(슬로베니아)는 여자 100m에서 11초 초반대 기록으로 준결승까지 순항했으나 정상급 스피드 경쟁에서는 힘이 부쳤고 올림픽 금메달을 2번 목에 걸었던 37세의 게일디버스(미국)도 20대 스프린터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90년대 트랙을 달궜던 '100m 탄환 스타군'의 일원이던 아토 볼든(트리니다드토바고), 프랭크 프레데릭스(나미비아)도 세월이 흐르면서 줄어든 스피드를 탓하며스타디움을 빠져나갔다.

(아테네=연합뉴스) 특별취재단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