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팩스 시니카(Pax Sinica)'라는 용어가 자주 눈에 띤다.

한마디로 '중국에 의한·중국을 위한·중국 중심의 국제질서'로 중화주의를 말한다.

중국이 이런 야망을 꿈꾸는데 있어서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그만큼 경제력이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8년 개혁·개방 이래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9% 이상을 기록해 왔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은 1조 달러를 넘어 세계 7위,구매력은 4조 5천억 달러에 달해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다.

국제금융시장에서도 중국의 부상이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다.

현재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여전히 유태계 자금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국제기채(起債) 시장에서 만큼은 화교계 자금이 제1선 자금으로 떠오르고 있다.

팩스 시니카의 첫 단계는 중국을 재결합하는 작업이다.

최소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 본토와 대만,홍콩간의 중화경제권은 태동됐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화인자본을 매개로 한 화교경제권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세계화상대회 등을 통해 중국밖에 나가있는 중국인들을 확인하고 결속을 다지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추진해 오고 있는 정책이다.

다음 수순인 중국 이외의 주변국에 대한 세확장 작업도 갈수록 뚜렷해 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시아 주도권을 놓고 일본간의 미묘한 갈등과 위안화 평가절상 문제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통화전쟁이다.

우려되는 것은 이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한국 등이 자국의 이익을 강조하는 경제민족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는 점이다.

우리 경제내에서도 중국의 높아진 위상이 감지된지 오래됐다.

이미 중국은 한국의 제일 수출시장이자 최다 통상마찰국이다.

기술수준에 있어서도 일부 첨단기술 분야를 제외하고는 중국에게 추월당한 상태다.

하이닉스,쌍용자동차 인수과정에서 중국이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생각할 수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중국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은행을 비롯한 대부분 예측기관들은 2007년이 되면 중국은 유럽연합(EU)를 앞서고 오는 2020년이 되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5년이나 2030면이 되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적으로도 수퍼 파워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중국은 18세기부터 서양 열강과 일본에 의해 침탈당한 식민지 역사를 보상받고 20세기초의 '팩스 브리태니아(Pax Britannia)',20세기 후반의 팩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에 이어 21세기를 중국의 세기로 만들겠다는 팩스 시니카의 부푼 야망을 실현시켜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중국의 팩스 시니카 움직임이 가시화되면 될수록 한편으로는 중국과의 갈등이 심해지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과의 협력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이다.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전개될 수 있음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우리는 일본과 중국간의 샌드위치에 놓여 있다.

오히려 일본과 비슷한 입장에 처해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제3국 시장이 중국에 의해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고 대부분 국내기업들이 중국 진출을 서두르고 있어 산업공동화 문제가 심각한 경제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보통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위상이 크게 달라진다.

만약 이미 구체화되고 있는 팩스 시니카 움직임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어떤 국가보다도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여러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먼저 비슷한 입장에 처한 일본과 한국은 종전과 다른 차원의 협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토대로 중국에 대항하기 보다는 한국과 일본,중국이 동반자적인 관계에서 동북아 협력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런 관계설정이 갈수록 구체화될 것으로 보이는 팩스 시니카 움직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면서 우리 경제의 안정성을 보장받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