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許 湜 중앙대 교수ㆍ경제학부장 >

지루한 공방 속의 올해 노사협상도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매년 어렵게 되풀이되는 임금협상에 대해 국내 외국 기업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작년 워싱턴에서 열린 제16차 한·미 재계회의에서 미국 측은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약) 기간을 3∼5년으로 연장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나타냈고,올 7월20일 제주도에서 대한상의 주최로 열린 한 강연회에 GM대우 라일리 사장은 노사안정을 위해 2∼3년간 유지하는 다년(多年)협상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 임단협의 유효기간은 최장 2년으로 돼 있지만,대부분 매년 협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임단협 기간이 훨씬 짧다.

그러나 임단협 기간이 짧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려면 고용과 임금이 시장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돼야 하는데 장기에 비해 단기 임금체결은 자주 경제 상황을 반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임금조정이 용이하게 된다.

이처럼 짧은 협약기간은 임금조정 측면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점은 매년 임금협상을 함으로써 엄청난 교섭비용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노사분규로 인한 한국의 노동손실일수는 OECD회원국 평균치보다 두 배가량 높고,작년에 제조업 기준 생산차질액이 2조5천억원에 달하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선진 각국에서 임단협의 유효기간이 장기화되는 추세에 발맞추어 관련법 개정을 하려고 한다.

정부의 법개정 내용을 살펴보면,협약기간은 노사자율로 하되 3년 초과협약인 경우에는 3년 경과 후에 어느 한쪽이 6개월 전에 통보해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자율'에만,사용자 측은 '장기간 허용'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우리는 노사간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임단협 기간이 장기체결로 가기 위해서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성숙된 노사관계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노사간에 자율적으로 협약기간을 정하기 위해서는 상호신뢰하에 기업의 투명성 보장과 함께 노조의 과격한 행위가 사라지는 성숙된 노사관계 분위기부터 조성돼야 한다.

즉 임단협 기간의 자율성은 대립구도에서 협력구도로 노사관계가 전환될 때만 보장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체결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노사협의체와 같은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시장상황을 그때그때 파악해 솔직하고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노사간 이해관계의 폭을 넓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장기체결로 인해 협약기간 내에 물가가 상승할 수도 있고 경제 상황이 급하게 변할 수도 있다.

따라서 물가상승에 대한 생계비조정 조항과 상황 급변에 대한 임금재교섭 조항을 단체협약에 삽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요즘과 같이 무한경쟁시대에서는 사전(事前)적으로 자신의 몫만 챙기는 배분적 협상보다는 기업의 미래 파이를 증가시켜 사후(事後)적으로 상생하는 이윤배분식 협상이 유익하다.

이런 경우에는 협약기간내 근로임금이 기업성과에 언제,어떻게 연계돼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협약기간이 장기화되면 모든 산업·업종·직종이 한꺼번에 협상하는 동시적(synchronizing) 협상형태보다는 각 산업·업종·직종의 특성을 고려해 편리한 시기에 따로따로 협상을 진행하는 축차적(staggering) 협상형태가 바람직하다.

이러한 다원적 교섭체계는 교섭의 장기화와 소모적 갈등을 해소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결국 자율적인 임단협 기간의 연장문제는 상호신뢰 하에서 기업의 특성에 따라 효과적인 협약내용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불안정한 노사관계를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안정적이고 협력적인 노사관계의 틀을 빠른 시간내 마련해야 하는데,이를 위해 노사 모두가 다시 한번 임단협 기간 연장에 대해 재고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