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전 9시 서울시 중구 명동.
신용회복위원회 빌딩 맞은편 건물에 있는 오명근 변호사(32) 사무소.
출근과 동시에 신용불량자 등으로부터 걸려오는 무료 상담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는 오 변호사는 "요즘 상담자 중에는 우리 사회에서 내로라하는 치과의사, 공학박사, 대기업 기획실 중역, 벤처기업 사장까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고소득 전문직종 종사자들도 신용불량시대의 피해자로 전락하고 있어 그만큼 불황의 골이 깊다는게 오 변호사의 진단이다.
수화기를 어깨에 괸 채 인터넷 카페(cafe.naver.com/recredit21.cafe) 무료상담까지 진행하던 오 변호사는 1시간여 동안의 상담전화를 끝내고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요즘 신용불량문제나 불법추심에 대한 해결책 등을 상담하는 전화를 하루 평균 30~40통씩 받고 있다.
오 변호사는 군법무관 시절 지인들에게 워크아웃, 파산신청 등에 대해 조언해준 것을 계기로 무료상담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본업'이 되다시피했다.
경기불황 등으로 개인파산신청 등이 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연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낮 12시를 넘기자 또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뜻밖에도 L카드회사에 고용된 추심원.
다른 카드사 추심원으로부터 빚독촉을 당하다가 '못살겠다'며 법적 대응방법을 물어온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추심원도 빚보증 등을 잘못서면 또다른 추심원으로부터 빚독촉을 받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집니다."
추심원과 전화상담을 끝낸 후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인 오 변호사는 펑펑 쓰고 난 후 배째라는 식의 모럴해저드도 문제지만 장기불황과 개인파산시대에 보증제도에 대한 보완도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번은 빚보증 2억원 때문에 망한 남자가 반포대교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궁금한 게 있다'며 전화를 걸어왔어요. 자살하면 두 딸에게 보험금이 지급되는지가 궁금하다는 겁니다."
그 남자는 '죽더라도 방법을 들어본 뒤 결정하라'는 상담 직원의 설득에 벗어놨던 신발을 도로 신었다.
현재는 오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개인파산 신청을 준비중이다.
신용불량자 3명을 최근 정식직원으로 채용한 오 변호사는 앞으로 신용불량자들로만 구성된 회사 설립을 구상중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