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기계 가운데 7대가 서 있습니다. 지난달 10명의 직원을 내보냈는데...이러다 문을 닫아야하는 상황에 몰리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구미의 직물업체 O사의 L사장.

그는 (주)코오롱의 파업 사태가 두 달을 넘기면서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워졌다며 한숨을 내쉰다.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죽어나가는 판인데 '노동 귀족'들이 앞다퉈 농성장을 드나들며 파업을 더 끌어달라고 부추기고 있으니 이래도 되는 겁니까."

코오롱에서 폴리에스터 원사를 받아다 실과 직물을 가공하는 임가공 업체인 이 회사는 파업 사태로 원료 공급이 줄어들면서 생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월 매출이 3억원에서 1억원으로 줄어드는 등 커다란 손실을 입고 있다.

L사장은 "추석도 다가오는데 가동률이 30% 밑에 머물고 있어 30여명의 직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며 "협력업체의 어려움을 감안해서라도 파업 사태를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오롱 파업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코오롱은 물론 협력업체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코오롱측은 매일 10억원씩 6백억원대 매출 차질을 빚고 있을 뿐 아니라 기계설비 가동 중단에 따른 손실 등을 포함하면 1천억원대 손실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코오롱에 원·부자재를 공급하는 하청업체,코오롱으로부터 폴리에스터 원사를 공급받아 직물 등을 생산하는 임가공 업체 등 대구·경북지역 4백여개 관련 업체 피해는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산업자원부는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일부 협력업체는 기계 임대료를 제때 내지 못해 도산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직원들을 정리해고하는 업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북 구미공단 7만1천여명의 근로자 가운데 코오롱 관련 업체 직원이 3.7%인 2천6백명에 달하고 있는데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이들이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협력업체 P사의 C사장은 "코오롱 노조에 하청업체의 입장을 설명하고 임금 수준을 알려줘도 노조측에서 꿈적도 않는다"고 답답해 했다.

그러나 코오롱 파업 사태는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노사 양측이 설비 구조조정과 임금 인상 등에 합의했지만 파업기간의 임금 지급과 고소·고발 및 징계 철회 등을 놓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어서다.

아예 사업을 접고 업종전환이나 해외이전을 검토 중인 협력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한 부품업체 관계자는 "이제 우리나라에선 화학섬유업종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아이템이 거의 없다"며 "이번 기회에 기계를 팔고 정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계사업을 철수하고 수익성 높은 새로운 부문으로 투자를 전환해야 하는데 현장 근로자들의 반발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대기업 노조도 이제는 경쟁력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쪽으로 의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태웅.구미=유창재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