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한제도와 계좌추적권 시한 연장을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다시 국회 정무위에 상정돼 심의가 시작됐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7월 임시국회에서 본회의 상정에도 실패한 개정안을 다시 제안한 이유에 대해 "대기업집단의 경쟁제한과 시스템 리스크의 원인이 되는 왜곡된 소유 지배구조의 개선이 시급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연 야당과 재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는게 그렇게 시급한 사안인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과잉 규제'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기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기업투자를 막는 출자총액제한은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마저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고,계좌추적권 연장도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시장경제를 하겠다면 각종 법체계와 제도를 시장친화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도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나 정책노선을 내세워 반시장적 규제를 강화하려는 처사는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정부 여당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재벌개혁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업활동을 도와주는게 아니라 기업과 싸우겠다는 뜻으로 비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이 제도를 폐지해 달라는 경제5단체장들의 요청에 대해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참여정부의 경제철학과 시장개혁 정책에 어긋나는 요구"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는 점은 그런 우려를 더해준다.

엊그제 이해찬 국무총리는 총리실 산하에 민관합동 규제개혁기획단을 신설하면서 철저히 수요자 관점에서 획기적인 규제개혁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정부내에서 총리는 규제개혁을 외치고,공정거래위원장은 규제의 칼을 곧추세운다면 과연 누가 정부에 대해 진정 규제완화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은 경쟁촉진이라는 본래의 법취지에 충실하도록 개정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쟁을 촉진시키기는커녕 기업활동을 억압하는 규제를 강화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재벌개혁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공정거래법은 본래의 경쟁촉진법으로서의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

국회 정무위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심의는 어쩌면 우리가 추구하는 시장경쟁질서 구축의 시험대가 아닌가 싶다.

이번 법안심의에서는 이점이 가장 우선적인 판단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