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윤대 고려대 총장 president@korea.ac.kr >

경제학자 케인스는 경제가 잘 돌아가서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일을 고민하지 않으면 나 같은 경제학자는 무슨 일을 하며 살지를 걱정했다고 한다.

혁명가 마르크스의 고민은 더 깊었다.

그는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급속한 자본축적과 기술발전을 통해 물질적 풍요를 가져올 것이지만,공황과 계급투쟁 때문에 필연적으로 공산주의 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낙원사회가 오면 사람들은 무슨 일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막혔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러셀은 '행복의 정복'이란 책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폈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복하는 것이고,권태를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그 필수조건의 하나라는 것이다.

영국의 귀족들에게는 '권태'가 가장 무서운 형벌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귀족학교에서는 어릴 때부터 명상 등을 통해 권태를 이기는 방법을 훈련시켰다고 한다.

고교입학은 평준화가 좋은가 입시제도가 좋은가? 사립학교 기부입학 옳은가 그른가? 우리사회는 이런 문제가 나오면 일방은 옳고 타방은 그르다면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쪽도 정답은 아니다.

평준화를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평준화 학교를 택하게 하고,입시제도를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입시제 학교를 택하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밀튼 프리드먼이 말하는 '선택의 자유'다.

프리드먼은 교육의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가 원하는 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정부의 역할은 학교가 지켜야 할 기본규칙을 정하고 감독하는 일,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초교육을 제공하는 일 등으로 제한돼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입시나 기부입학 등의 문제는 학교가 자율적으로 정하고 소비자인 학생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 국가권력이 강제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런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사회가 가장 좋은 사회다.

일부 엘리트 그룹이나 국가권력이 자신들의 가치기준에 따라 제작된 기성복을 국민에게 강제하는 사회는 개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지겹기 짝이 없는' 지옥 같은 사회다.

역사학자 카가 말하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와 평등이 최대한 보장된 사회,그런 자유를 지탱하는 물질적 토대를 풍부하게 쌓아가는 사회,이런 사회가 우리가 꿈꾸는 21세기 대한민국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