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금융위기설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재정위기를 전격적으로 경고하고 나서자 주가와 페소화 가치가 일제히 급락하는 등 필리핀 금융시장이 심각한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 "급증하는 재정적자를 해소하지 못할 경우 필리핀 경제는 수년 내에 아르헨티나가 겪었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에 빠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재정위기 경고로 금융시장 '휘청'=아로요 대통령은 지난 23일 "우리는 이미 재정위기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필리핀 국가원수가 공개적으로 국가 재정위기 가능성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로요 대통령은 이미 재무부 장관에게 '재정위기 선포' 계획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상태다.

재정위기가 선포되면 대통령은 정부예산의 40%에 해당하는 지방정부에 대한 세금수입 교부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다음날인 24일 필리핀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필리핀 종합주가지수는 전일 대비 2.2% 떨어진 1,542.01을 기록,1개월 만에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전날 달러당 55.85페소에서 움직이던 필리핀 페소 가치는 순식간에 달러당 56페소를 돌파,장기적인 약세를 예고했다.

불안심리를 반영,국채금리는 큰 폭의 오름세(국채가격 급락)를 보였다.

4년만기 재무부 국채 입찰에서 낙찰 금리는 이전보다 0.75%포인트 오른 11.75%에서 결정됐다.

◆만성적인 나라 빚에 '신음'=현재 필리핀 정부의 공공부채는 국영 전력회사인 나포코의 누적적자와 손실이 커지면서 3조3천6백억페소(약 71조원)로 늘어나 국내총생산(GDP)의 70%를 훨씬 웃돌고 있다.

재정적자도 올해 1천9백78억페소(약 4조2천억원)를 기록,GDP 대비 4.2%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외채도 해마다 불어나고 있다.

2003년 말 현재 필리핀이 외국에 진 빚은 총 5백63억달러로 GDP의 74%에 달한다.

이 같은 재정위기의 1차적인 책임은 '인기 영합주의적인' 정치인들에게 있다.

필리핀 의회는 유권자들을 의식,세수 확충 방안은 마련하지 않은 채 정부 지출만을 늘리는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정부측에서 담배 술 등에 대한 세금 인상안을 내놓아도 의회가 이를 번번이 거부했다.

그 결과 GDP 대비 조세수입 비중은 지난 97년 17.0%에서 계속 줄어들어 작년에는 12.3%까지 축소됐다.

또 필리핀에서는 15대 명문 가족이 국부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반면 연간 소득 2백70달러 이하의 극빈층이 전 국민의 34%를 차지한다.

부의 편중 현상은 필리핀의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요소다.

노동력의 3분의 1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국내총생산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할 정도로 생산성이 낮은 산업구조도 문제다.

상하수도 도로 등 사회인프라와 산업기반도 매우 열악하다.

FT는 "부정부패 척결과 세수입 확대 등 강력한 정치·경제개혁만이 필리핀을 위기에서 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