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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나가서 너는 네식대로 살어" "다신 내 인생에 관여하지 말아요!"
아버지와 딸은 서로를 향해 불만을 터뜨린다.
아버지는 술과 폭력으로 가정을 지옥으로 만들었고 이에 반발한 딸은 집을 뛰쳐나가 전과4범의 소매치기로 전전하다가 돌아왔다.
부녀는 더이상 애정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이정철 감독의 '가족'은 한국영화로는 드물게 부녀간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다.
'사마리아'와 '장화,홍련'에서는 부녀의 애증이 딸의 원조교제,딸과 새어머니의 마찰에 각각 밀려 뒷전으로 밀려났다.
'가족'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정면으로 접근해 가족의 소중함을 감동적으로 일깨워 준다.
제작사 튜브픽쳐스는 할머니와 손자가 거리를 좁혀가는 과정을 흐뭇한 웃음으로 포장했던 전작 '집으로…'와 다른 방식으로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아버지 주석 역의 주현과 딸 정은 역의 수애는 부자(父子) 관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가족간의 심리를 실감나게 연기했다.
날선 감정의 대립 아래 흐르는 따스한 연민,서로 화해하지만 끝내 극복할 수 없는 서먹함 등이 그것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예리한 성찰은 아버지와 자식,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뚜렷하게 새겨 놓는 역할을 했다.
가족은 구성원에게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며 장애물이자 보호벽이다.
가정 불화의 원흉으로만 여겨졌던 주석은 사실 어린 정은의 실수로 실명했고 이로 인해 직장도 그만뒀던 '가족의 희생양'이다.
주석이 딸을 대신해 자신을 던지는 종반부는 아버지가 지닌 희생의 이미지를 구체화했다.
주석이 건달에게 무릎 꿇는 장면은 자식의 원죄를 기꺼이 짊어지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부녀간 갈등과 반목은 외부의 침입자가 나타났을 때 화해와 협력으로 바뀐다.
바깥 세상이 험난할수록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포근한 법이다.
이 작품으로 영화에 데뷔한 수애는 청순가련형의 이미지를 벗고 반항적이며 강단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러나 웃음과 액션이 적고 출연진이 소수이며 줄거리도 단선적이어서 흡사 'TV문학관'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흥행작 '집으로…'와 비슷한 패턴이다.
'집으로…'의 웃음 대신 이 작품에는 눈물이 있다.
9월3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