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전 여의도 산은캐피탈 강당.증권·자산운용사 사장단은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과 상견례를 겸한 조찬간담회에서 작심이라도 한 듯 은행 중심의 정부정책에 대해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은행의 공격적인 영토확장으로 증권업의 생존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의 표출인 것이다.

실제 외환위기 이후 은행은 펀드판매와 자산운용업 등 증권·자산운용사의 고유영역을 꾸준히 침범해왔다.

하지만 증권사는 증권거래법에 명시된 유가증권에 관한 업무만 할 수 있도록 제한받고 있다.

증권사가 장외파생상품을 취급하려면 자기자본 영업용순자본비율 인력 등 은행에 비해 엄청나게 까다로운 조건을 맞춰야 한다.

같은 상품인데도 은행(ELD)에서 팔면 예금자보호 대상이 되고 증권사 상품(ELS)은 보호대상이 아니다.

은행과 증권사간 이 같은 불균형은 실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19개 국내은행은 올 상반기 중 사상 최대 규모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21개 상장 증권사(3월결산법인)들의 1분기(4∼6월) 순이익은 전년 동기에 비해 67% 격감했다.

은행 독주로 인한 부작용은 단순히 증권사의 생존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증권산업의 몰락은 직접금융시장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보수적 자산운용은 자금흐름을 왜곡시켜 필요한 곳으로 돈이 흘러가는 것을 막고 있다.

시중 부동자금이 4백조원에 달할 정도로 넘쳐나지만 중소기업은 대출상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공적자금이 64조원이나 투입됐지만 부동산 및 카드대출을 빼놓고 은행들이 한 일이 뭐가 있느냐"(홍성일 한국투자증권 사장)는 불만이 나올 만도 하다.

지금도 금융정책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증권사가 망해도 투자자나 기업의 피해는 없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통용되고 있다고 한다.

재정경제부 출신인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재경부 내에서는 은행이 아닌 증권쪽에 발령이 나면 물먹은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전했다.

증권·자산운용사 사장단의 항의를 의례적인 '엄살' 정도로 여긴다면 정부가 구상 중인 동북아 금융 허브의 꿈은 한낱 공염불에 그칠 것이 뻔하다.

이건호 증권부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