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회사에 볼 일이 있어 전화했더니 오후 5시까지 오면 된다고 했어요. 4시50분께 갔더니 담당여직원이 '누가요. 4시30분까진 와야죠'라고 야단치듯 말하더군요. 그 여직원이 퇴근한 다음 남자직원이 서류를 주면서 '놀이방에 맡긴 아이를 찾으러 빨리 가야 한대요'라고 변명인지 핀잔인지 모를 얘기를 하더군요."

같은 시간,애 아빠는 느긋하게 남은 일을 처리하거나 회식 참가 준비를 할지도 모른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데도 육아는 여전히 엄마의 몫이다.

게다가 법에 상관없이 일선에서 남녀를 대하는 시각은 차이나기 일쑤다.

"결혼까진 모르겠는데 배불러서 다니는 건 좀." "결혼한 여자를 늦게까지 야근시킬 수도 없고."

현실이 이런데 한쪽에선 여성들이 아기를 안낳는다고 야단이다.

2002년 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낳는 아기 수)이 세계 최저(1.17)가 된데 이어 지난해엔 신생아 수가 49만3천5백명으로 통계를 내기 시작한 70년 이래 가장 적었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1백년 뒤 국내 인구는 1천7백만명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인구는 국가와 민족을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확실한 힘이다.

인구가 있어야 노동력과 소비가 있고 노동력과 소비가 있어야 경쟁력이 생긴다.

세계 각국이 중국을 향해 미소짓는 건 엄청난 노동력과 시장 때문이다.

아테네가 멜로스를 정복한 건 멜로스에 힘이 없었던 탓이라고 하는데 이런 일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정부와 국회가 '출산장려법'을 제정한다고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출산수당을 주고 육아비를 보조하면 다소 나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부 지방에서 출산시 장려금과 선물을 줘도 전체 신생아의 절반(49.9%)이 서울·경기에서 태어났다는 데서 보듯 출산 장려는 법이나 지원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출산율을 높이자면 여성들이 결혼해 엄마가 되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인생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낳고 싶고 아이를 위해서도 둘이 좋은 건 알지만 형편상 하나 키우기도 벅차 포기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