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 시인.문학평론가 >

주변에서 다들 삶이 어렵다고 한다.

경제의 위기감을 호들갑스럽게 증폭시키는 매체가 아니더라도 우리 경제가 예전에 비해 활력을 잃고 소비가 위축되는 조짐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렵다는 말은 보다 풍요했던 시절보다 덜 쓰고 덜 누리고 사는 것에서 나온 불만을 담은 표현이겠다.

앨빈 토플러는 현대사회가 '창자' 경제에서 '심리'경제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육체의 필요는 협소하며 그 경계도 분명하니 충족도 어렵지 않지만,심리는 한계나 특정한 경계가 없어 그 만족도 쉽지 않다.

군자는 의리에 살고 소인은 이익에 산다고 했다.

부를 향한 광란으로 뒤덮인 사회에서 눈앞에 이익을 놔두고 의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모두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소비하려는 이 탐욕의 시대에 군자의 의리를 떠올리게 하는 한 미담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내가 아는 시인 중에 가난한 이가 있다. 세상의 명리를 좇지 않고 사니 늘 가난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급히 돈 쓸 일이 있어 시인은 집에 있던 백자 항아리를 들고 고향 친구를 찾았다.

고향 친구는 혈액암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유명한 의사다.

시인은 의사 친구에게 백자 항아리를 내밀며 돈 부탁을 했다.

적잖은 액수였다.

의사 친구는 두말 하지 않고 돈을 마련해주었다.

돈까지 내주며 항아리를 맡는 수고까지 떠맡을 수는 없다고 항아리는 받지 않았다.

한 해 뒤 시인은 또 급하게 돈 쓸 일이 있어 염치 불구하고 그 친구를 다시 찾아갔다.

그때도 시인은 백자 항아리를 옆에 끼고 갔다.

이번에도 친구는 시인의 돈 부탁을 들어주었지만 항아리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도 두어번 더 시인은 의사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결국 의사 친구는 시인이 가져온 백자 항아리를 받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시인의 딸이 혼사를 올리게 됐다.

시인은 의사 친구를 다시 찾았다.

이번엔 돈 부탁이 아니라 주례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의사 친구는 기쁜 마음으로 주례 부탁을 승낙했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의사 친구는 말재주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객들은 조용히 앉아 그 눌변의 주례사를 경청했다.

다른 결혼식에서 흔히 듣는 주례사와는 많이 다른 주례사였다.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주례가 보자기로 싼 백자 항아리를 주례석에 슬그머니 올려놓았다.

시인의 소유물이던 그 백자 항아리를 자신이 갖고 있게 된 경위를 더듬더듬 설명했다.

주례는 젊은 부부에게 부탁을 한다.

살면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항아리에 귀를 대고 항아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렇게 백자 항아리는 시인에게서 의사 친구에게로 갔다가 다시 시인의 딸에게 돌아왔다.

아마 누구라도 백자 항아리에서 울려나오는 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크고 작은 난관을 잘 이겨낼 것이다.

나는 수도승을 흉내내서 무욕의 삶을 따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필요를 넘어서는 물질에 대한 욕구는 어느덧 제2의 피부처럼 달라붙어서 그것을 떼려면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물질의 욕구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쉬운 실천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행복이나 진정한 풍요의 느낌은 물질적 욕구의 충족에서 찾을 수는 없다.

사사로운 이익을 두고 그것을 차지하려는 다툼과 갈등이 생기면 서로에 대한 미움이 커진다.

우리 사회에 그 미움의 에너지가 너무 커진 듯하다.

우리는 물질의 삶만을 키우고 따르느라 내면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내면의 공허는 물질로서 메워지지 않는다.

가지려 애쓸수록 존재는 더욱 왜소해지는 법이다.

오히려 적당히 자족할 때 심리적 부와 풍요를 느끼고,감정의 금욕,검소한 삶에 대한 가치를 따를 때 더 큰 삶의 충일감을 누릴 수 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다.

그러나 태양의 빛을 받아 어두운 밤길을 가는 이의 앞을 비춰줄 수 있다.

우리는 달과 같아서 스스로 저 자신의 행복이 될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행복이 될 수는 있다.

저마다의 이익,자기만의 행복을 좇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될 수는 없다.

시인과 그 친구의 이야기는 나는 너에게,너는 나에게 어두운 밤길을 비춰주는 달이 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