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배 < 예술의전당 사장 ybkim@sac.or.kr >

미국유학시절 내가 살던 동네 옆으로 아주 큰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었는데,그 도로는 나에게 무척 중요한 길이었다.

학교에 갈 때나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으로 출근할 때면 어김없이 그 길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서는 20여 분간 복잡한 시내를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차가 많이 막힐 때면 '우리 동네에서 곧바로 고속도로로 갈 수 있는 진입로가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실제로 진입로를 만든다는 희소식이 들려왔고,나는 하루빨리 공사가 완공되기만을 기다렸다.

어느덧 길은 완연히 형체를 드러냈고,이제 그 위에 아스팔트만 깔면 되었기에 나는 매일 그 길을 바라보며 이제나저제나 하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한 달,두 달이 지나고 반 년이 지나도 개통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기다림에 지친 나는 '예산부족으로 완공하지 못하는 구나'라며 단념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공사관계자를 만나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스팔트를 깔기 전,최소 2년은 그 상태로 비,바람 그리고 눈을 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 아스팔트를 덮어야 길이 더욱 견고해지고 태풍이나 홍수에도 든든하다고 한다.

아쉽게도 나는 진입로가 완공되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왔고,그 길을 달려보지는 못했지만 완벽한 것을 위해 오랜 시간 참고 인내하는 그들의 미덕과 또 그것이 만들어내는 완전함이 부러웠다.

사상누각의 허무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여전히 빨리빨리를 외치며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 기다림이란 남에게 뒤처지는 것인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

조급함은 예술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재라는 이유만으로 필요 이상으로 열광하고,불필요한 과보호를 그들에게 기꺼이 주려고 한다.

그들이 저절로 성숙하게끔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을까? 연인의 달콤한 속삭임에 가슴 떨려도 해보고,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 남은 자의 고통에 몸부림치기도 하고 결혼,출산 등 인생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혼자 견뎌내고 굳게 설 수 있도록 지켜봄은 어떨까?

인생의 어려움,예술연마의 고통을 스스로 이겨내고 우뚝 선 30대의 멋진 인간,참된 예술가의 탄생을 기다려보자! 길 하나를 닦기 위해 2년여의 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