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금융감독원 기자실.

오전 9시40분께 금감원 공보실 직원의 메시지가 전달됐다.

9시50분께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이 긴급 브리핑을 할 것이라는 예고였다.

10분 정도 지나 브리핑실을 찾은 김 부원장은 대뜸 문서 한 건을 꺼내 들었다.

국민은행 검사과정에서 입수한 국민은행의 내부문건이었다.

국민은행의 회계기준 위반이 사전에 계획된 것임을 '폭로'한 것이다.

이어진 브리핑에서 김 부원장은 "김정태 행장을 흔들 이유는 전혀 없다"며 "김 행장이 회계기준을 위반한 만큼 그에 합당한 징계를 내리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난해 김 행장이 회계투명성 향상을 위한 이행각서까지 쓰고 이를 감독 당국이 수용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김정태 흔들기'는 말도 안된다고 펄쩍 뛰었다.

1시간여 지난 11시께.

이번엔 김 행장이 집무실에서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대통령도 '위기관리 과정에서 선의로 내린 판단오류에 대해서는 면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국민카드 합병과 관련한 금융감독 당국의 회계규정 위반 제재방침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특히 국세청 법무법인 회계법인 등으로부터 모두 합병 회계처리가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점심식사 시간이 지난 오후 2시께.

집무실로 찾아간 기자에게 김 부원장은 국민은행의 규정위반 사항에 1천5백억원의 충당금 과소적립 건이 더 있음을 알려주며 "김 행장에게는 문책경고 이상의 제재가 내려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행장의 인터뷰 내용에 대한 금감원 측의 '쐐기 박기'라는 인상을 주었다.

이날 벌어진 금감원과 국민은행 사이의 공방은 회계기준 위반 논란이 점차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엔 단순한 '회계기준 해석상의 차이'로 비쳐졌으나 이제는 서로가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는 식으로 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것.

이 과정에서 서로 상대의 수를 읽고 허를 찌르려는 의도도 엿보이고 있다.

김 부원장이 이날 국민은행의 추가 규정위반 내용을 공개한 것이라든지 김 행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내용을 언급한 것 등이 그런 인상을 준다.

이 같은 금감원과 국민은행 간의 대립은 지난 6월부터 시작됐다.

금감원은 5월 중순께 마친 국민은행 종합검사 과정에서 3∼4건의 회계처리가 기준에 어긋난다는 판단을 내리고 회계심리에 착수했다.

그 중에서도 국민카드 합병과정에서 대손충당금 환입 및 국민은행의 포괄승계가 포인트였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감지한 국민은행은 6월 말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과 국세청에 질의한 바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언론에 알렸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에 대해 "터무니없다"는 태도다.

김 부원장은 "국민은행이 국세청에 질의한 것은 합병과 관련된 원론적인 질의일 뿐 구체적인 사안이 아니어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금감원은 지난 16일과 23일 감리위원회의 토론을 거쳐 25일 증선위에서 국민은행이 회계기준을 위반했음을 확정했다.

위반의 수준은 '중과실 3단계'였지만 고의성은 없다는 결론이었다.

이에 따라 언론은 "김 행장의 부활 및 10월 주총에서의 연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금감원이 발끈했다.

"중과실 3단계란 국민은행 최고경영자(CEO)인 김 행장이 문책경고 이상의 징계를 받는 것이며 이는 연임 불가 판정"이라고 26일 못박았다.

그러자 국민은행은 29일 김&장 법무법인의 의견을 언론에 알렸으며, 김 행장이 인터뷰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국민은행과 금감원 사이의 숨가쁜 랠리는 조만간 열릴 제재심의위원회와 다음달 9일로 예정된 금감위 정례회의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중과실이지만 고의성이 없다"는 증선위의 다소 애매한 결정이 발단이다.

고의성이 없기 때문에 김 행장을 포함한 국민은행 관련 임직원에 대한 문책 때는 당시 상황이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 국민은행의 생각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관용'을 베풀 생각이 전혀 없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지난해 LG카드 처리 때 김 행장이 정부에 반기를 든 것에 대한 보복이 아니냐"며 "신관치론"을 펴고 있다.

금감원과 국민은행 간 치열한 공방전은 앞으로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하지만 어떻게 매듭지어지든 양측 모두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