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후 파리.스물두살의 문학청년 헤밍웨이가 비를 맞으며 한 카페에 들어섰다.

생미셸 광장 안에 있는 카페는 깨끗하고 정겨웠다.

그는 젖은 옷과 모자를 걸어놓고 럼주를 한 잔 시킨 뒤 재킷에 든 노트를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가끔 연필을 깎으며 멋진 문장을 떠올렸다.

동그랗게 말린 연필 부스러기가 술잔의 받침대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낯선 여인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원고를 써내려갔다.

훗날 그는 '작품 한 편을 쓰고 난 후에는 언제나 지쳐 있었지만 그건 사랑의 행위가 끝났을 때처럼 아쉬우면서도 동시에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토론토 스타'지 유럽 특파원이었던 헤밍웨이의 1920년대 파리 시절 회고록 '헤밍웨이,파리에서 보낸 7년'(어네스트 헤밍웨이 지음,윤은오 옮김,아테네,9천8백원)이 완역돼 나왔다.

이 책에는 데카르트 거리의 작은 집에 세들어 살면서 앞날을 설계하고 소르본 대학 근처의 아름다운 무프타르 거리를 거닐며 작품을 구상하던 헤밍웨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노트르담 성당이 마주보이는 센 강변의 유명한 고서점 '셰익스피어 컴퍼니',그 책방 여주인 실비아 비치와의 우정,거트루드 스타인,스콧 피츠제럴드,에즈라 파운드,제임스 조이스와의 특별한 만남,저널리스트로서의 건조한 문장기법을 다듬던 작가수업 과정 등이 생생한 기억으로 재생돼 있다.

파리 여행을 꿈꾸는 독자라면 '일찍이 너무나 가난하고 또 너무나 행복했던 시절의 모습'이 담긴 대문호의 이 회고록을 따라 책갈피 사이로 펼쳐진 골목길들을 천천히 걸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