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가 일방적 무역제재 장치를 담은 '버드수정법'을 철폐하라는 요구를 미국이 이행하지 않은 것과 관련,회원국들이 무역보복조치를 발동할 수 있도록 승인함에 따라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사상 첫 통상 보복조치를 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한국의 제2 수출시장인 미국과의 무역마찰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으로 정부가 실제 통상보복 조치를 실행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WTO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한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8개국 정부가 작년 말이 철폐시한인 '버드 수정법'을 폐지하지 않고 있는 미국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승인했다. 이번 결정은 올 1월 8개국 정부가 WTO에 중재를 신청한 이후 7개월 만에 나온 것이다. 2000년 제정된 버드수정법은 미국 세관이 외국업체로부터 거둔 반덤핑과 상계관세 부과금을 자국 피해 업체들에 재분배토록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등 8개국은 외국기업에 벌금을 부과한 뒤 이를 미국 내 경쟁기업에 기술개발비나 의료비 연금 등의 형태로 분배하는 버드수정법이 주요 교역대상국들을 상대로 한 반덤핑과 상계관세 제소를 부추기는 원인이 될 것이라며 강력 반발해왔다. 이번 WTO 판정으로 한국을 포함한 8개국 정부는 WTO 중재패널이 자체적으로 설정한 산정방식에 따라 버드수정법으로 피해를 본 금액의 72%를 보복관세로 매길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한국은 작년 피해액 기준으로 매년 최고 1천3백만달러의 보복관세를 미국에 부과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WTO의 무역보복조치 승인이 내려짐에 따라 조만간 통상교섭본부 주재로 산업자원부 해양수산부 농림부 등 관계부처 회의를 소집해 무역보복 대상 산업 및 품목,품목별 관세인상 폭을 논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당장 보복조치에 나설 경우 주요 교역대상국인 미국과의 무역마찰이 심화될 우려가 있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버드수정법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EU나 일본에 비해 작고 산업이나 무역 등 경제전반에 미국이 미치는 영향력이 커 실제 보복조치 발동은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과는 올 연말이 시한인 쌀협상이 진행 중이어서 보복관세 부과로 인한 미국의 역(逆)통상공세가 거세지지 않을까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