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속의 한국기업] ⑨ '차이나 러시'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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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러시다.
올 상반기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투자액은 35억2천만달러(계약기준).중국과 한 나라가 된 홍콩,조세회피지역인 버진아일랜드를 빼면 우리나라는 사실상 중국의 최대투자국이다.
많은 기업이 국내 제조업 공동화라는 우려 속에서도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들의 '차이나 드림'은 얼마나 성공하고 있을까.
지난 10년 동안 베이징에서 한-중 정보기술(IT) 교류현장을 지켜온 아이파크의 모영주 소장.그가 최근 명함을 정리했다.
명함첩에는 ERP프로그램을 팔겠다고 찾아왔던 사업가,중국 워드시장에 진출하겠다던 벤처사업가 등 IT분야 약 3백개 업체 관계자의 명함이 꽂혀 있었다.
"사업을 포기하고 철수했거나,지금은 중국에 드나들지 않는 사람들의 명함을 하나하나 골라냈습니다. 남은 것은 50개 업체도 채 안됐습니다. 제 명함 기준으로 볼 때 83%는 중국진출에 실패한 셈이지요."
모 소장은 벤처기업의 실패 이유로 '기술 맹신'을 꼽는다.
자기 기술에 대한 정확한 수준을 모른 채 중국을 기술후진국 정도로 여기고 무턱대고 진출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서 쓴잔을 마셔야하는 또 다른 요인은 파트너 선정의 오류다.
파트너를 잘못 만나 사기 당하거나,심지어 사업체를 고스란히 빼앗기는 경우도 있다.
상하이 주변 창저우에 투자한 기계관련 업체인 S사는 지금 합작파트너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
S사가 지분 75%를,나머지 25%는 파트너가 현물(토지)로 투자하는 방식의 합자방식이었다.
계약 당시 '이후 토지를 평가해 자본금이상 나오면 현금으로 보상한다'라는 조항이 문제였다.
파트너는 토지 자산재평가를 했고,자본금보다 1억위안(약 1백50억원)이상 많이 나왔다며 보상을 요구했다.
이 회사 K대표는 "상대방이 땅값을 미리 알고 이 같은 조항을 달아 돈을 뜯어내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하이의 H사는 파트너가 몰래 기술을 빼내 같은 업종의 회사를 설립,거래선을 모두 빼앗겨 결국 공장을 접어야 했다.
산업은행 선양사무소 김명식 소장은 "중국 기업이나 관리들은 투자만 하면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호의를 보이다가도 일단 돈이 들어오면 얼굴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며 "파트너에 대한 다각적이고 장기적인 신용조사 및 치밀한 계약체결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라고 말했다.
관련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거나 법을 몰라 사업을 접거나,범죄자로 몰리는 경우도 있다.
샤오싱의 한 중견기업 직원인 K씨는 관세포탈 혐의로 1년째 감옥에 구속된 상태다.
기계(재봉틀)를 들여오면서 수입가격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상하이의 플라스틱봉지 업체인 J사는 수출용 플라스틱 백에 인쇄업 허가 없이 수주회사의 이름을 인쇄했다는 이유로 60만위안(약 9천만원)의 벌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법무법인 대륙 상하이지사의 최원탁 변호사는 "계약을 체결하거나 회사의 중요한 업무를 결정할 때 꼭 법률자문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거래대금 수금은 중국 투자기업들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다.
특히 외상거래 피해가 심각하다.
칭다오의 건설기계 업체인 H사는 지린성의 '악성' 대리점업체로부터 1천5백만위안(약 22억5천만원)의 자금을 떼일 처지다.
H사는 한 개발구에 있던 해당 대리점의 토지를 담보로 잡았으나,개발구가 이를 알고 미리 다른 회사에 땅을 넘겨버렸다.
H사는 개발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이겼지만 개발구가 여전히 원상복구를 거부,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많은 중국 투자업체들은 채권회수팀을 조직해 자금을 운영할 정도로 수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터지면 실질적으로 이를 회수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중국사업 실패를 두고 '수업료를 치렀다'고 자위하곤 했다.
이제 한-중 수교 12년.수업료를 더 내기에는 너무도 긴 시간이 흘렀다.
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