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륙 속 한국기업'시리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취재팀은 중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기업인 3백명 이상을 취재했다. "중국비즈니스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으며,또 어떻게 대응해야하느냐"가 대(大)주제였다. 기업인들의 대체적인 시각은 "중국경제가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잣대로는 중국을 이해할 수 없게 됐다. 그 "광속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우리 기업은 중국에서 "3류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한중수교 12년을 맞은 지금 중국 비즈니스 전략을 다시 짜야 할 시기인 것이다. --------------------------------------------------------------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기업인들이 꼽은 첫 번째 '중국비즈니스 성공 코드'는 역시 기술이었다. 과거 중국이 기술력과 자본력이 부족할 때 우리기업은 큰소리 치며 중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 최신 기술의 경연장으로 변한 지금은 다르다. 어정쩡한 기술로 중국에 들어왔던 기업들이 돈만 빼앗기고 보따리를 싸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격경쟁,인재유출,긴축정책에 따른 환경악화,브랜드파워 경쟁 등의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은 기술이라는 결론이다. 중국보다 한 발 앞선 기술 확보에 중국 비즈니스의 성패가 달려있는 것이다. "한국의 사업환경을 못 견디겠다고 중국으로 '탈출'한 기업은 여기서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은 단언컨대 한국보다 더 사업하기가 힘든 곳입니다. 한국에서 기술력,고급서비스로 성공한 기업만이 이곳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대우인터내셔널 박근태 상무)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그 다음 갖춰야 할 것이 유통채널이다. 전문가들은 '내 몸에 맞는 유통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충고한다. 지금 중국에는 편의점,홈쇼핑,프랜차이즈,심지어 방문판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통방식이 동시다발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내 제품의 성격에 맞는 최적의 유통채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 소비자에게 접근해야 한다. 상하이에 진출한 쇼핑업체인 둥팡CJ의 김흥수 사장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른 중국 유통혁명의 흐름을 탈 필요가 있다"며 "중국 파트너에게 유통을 맡기는 기존 방식으로는 이 시장을 파고드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릇된 비즈니스 관행을 지적하는 기업인도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 기업은 중국의 법을 너무 쉽게 보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적당한 '관시(關係)'를 동원해 법망을 피하려는 성향이다. 그러나 모든 게 법제화,제도화되고 있는 지금 관시에 의존한 사업은 개인과 회사를 파국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사소한 규정을 어겨 중국 감옥에 갇혀야 하는가 하면,규정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은 채 사업을 시작했다가 망한 경우도 있다. 사업 초기에는 법의 적용이 느슨하지만 일단 돈을 벌기 시작하면 당국의 감시가 강화된다는 것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조금 힘들고 이익이 적더라도 이제는 '준법 비즈니스'를 해야 합니다. 물론 관시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관시도 법의 테두리에 있을 때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채규전 대우종합기계 전무) 급변하고 있는 중국,우리의 새로운 중국 비즈니스의 동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디자인 마케팅기획 문화상품 전시비즈니스 등 소프트 산업에서 기회를 찾는다. 중국은 WTO 가입에 따라 서비스산업이 빠르게 개방되고 있다. 제조에 관한 한 중국은 이제 세계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다. 공장을 짓고 생산하는 기존의 중국진출 방식에서 벗어나 창의력 있는 소프트 상품으로 중국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인터넷게임이 중국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게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최근 상하이에 진출한 CJ홈쇼핑의 경우 단순한 홈쇼핑 기법뿐만 아닌 우리의 홈쇼핑 문화를 수출해 성공해나가고 있다. "젊은이들의 창의력,소프트웨어 개발능력,마케팅 기획 능력 등은 중국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우리의 경쟁상품입니다. 단순한 제품에도 우리의 문화를 담아야 합니다. 한국의 역동성 자체를 상품화해야 합니다."(김윤호 우전소프트 사장) 그동안 우리에게 중국은 제품을 생산해 내는 세계 공장으로서의 의미가 컸다. 중국은 그러나 WTO 가입과 함께 세계공장을 뛰어넘어 '세계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그 변화의 물결을 타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